
반도체 산업이 전반적인 침체를 겪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서, 반도체가 활용되는 고가 물품에 대한 수요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례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반도체 가격도 상승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반도체 칩이 들어간 기기의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 침체 상황에서 소비자의 지갑은 얇아졌는데, 가격 상승으로 구매 심리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PC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코로나19 펜데믹 초기만 해도,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PC 시장은 수혜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각국 정부가 일상 회복에 집중하고 있고, 온라인으로 진행되던 근무와 수업은 다시 오프라인 환경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국 복합적인 이유로 소비자가 PC와 주변 제품에 지출하는 비용을 줄이면서 반도체 기업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1위인 삼성전자도 3분기 실적에서 2019년 이후 첫 매출 하락을 보고했다. 회사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2% 급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트북,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D램, 낸드 등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부진한 탓이 컸다. 이러한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의 반도체 수익의 70%를 차지한다. 비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중앙처리장치(CPU) 강자 인텔은, 2분기에 이어 3분기까지 연속으로 매출 하락을 보고하면서 최근 인력 감축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인텔의 경쟁사로 자주 언급되는 TSMC의 상황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TSMC는 오히려 11월 매출이 50% 증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과연 어떤 것이 이들에게 차이를 안겨준 걸까.
수익성 높은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판 TSMC…유수의 기업 고객 확보해

모두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TSMC가 선전할 수 있던 건, 경쟁사와 조금 다른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은 크게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와 제조만 하는 파운드리(Foundry), 설계와 제조 모두 다 수행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IDM)으로 나눌 수 있다. 대표 팹리스로는 우리가 잘 아는 애플이 있다. 삼성과 인텔은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직접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에 속한다. 반면 TSMC는 팹리스 기업의 설계도를 받아 위탁 생산만 하는 제조 전문 파운드리 기업이다.
파운드리는 여러 회사의 설계도를 위탁받아 대량 생산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수익성만 보고 파운드리 사업에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었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다른 기업의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만큼 우수한 제조 기술이 요구된다. 특히 반도체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미세 공정’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TSMC는 이 분야만 35년 넘게 집중해왔고, 그 결과 가장 우수한 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이들 현재 3나노 공정 반도체까지 양산에 성공했다.

물론 삼성도 3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지만, 지난 35년간 TSMC가 고객사와 쌓아온 두터운 신뢰를 무너뜨리긴 어려웠다. TSMC는 앞서 언급했던 애플과 퀄컴(Qualcomm), AMD와 엔비디아까지 주요 팹리스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경기 침체 영향 덜 받은 아이폰 판매 덕분에…TSMC도 웃었다

파운드리 기업은 팹리스 기업의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만큼, 매출도 팹리스 기업의 제품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팹리스가 더 많은 제품을 출하할수록, 이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팹리스의 제품 출하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TSMC가 얻는 주문량도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TSMC의 고객사도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엔비디아와 AMD도 PC 수요가 줄면서 전반적인 출하량 감소를 겪고 있다. 다행히 TSMC에게는 애플이 있었다. 애플은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가장 영향을 적게 받은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출시된 아이폰 14 라인업도 오히려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다.
덕분에 TSMC의 11월 매출도 전년 대비 50.2% 증가한 72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Counterpoint Research)의 반도체 애널리스트 데일 가이(Dale Gai)는 CNBC에 TSMC의 매출에 아이폰 14 프로에 탑재된 A16 칩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아이폰 14 프로에 대한 높은 수요가 TSMC의 매출 상승을 견인한 셈이다.

최근 TSMC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대한 투자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늘린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대만에 위치한 TSMC가 미중 갈등에서 촉발된 지정학적 위협을 최소화하고, 애플을 비롯한 미국 고객사의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애플은 오는 2024년부터 애리조나 공장에서 칩을 공급받겠다고 밝혔다. 어쩌면 TSMC가 애리조나 공장에 투자를 늘린 것은 자사 매출에 애플이 미치는 영향력을 깨달은 데서 왔을지도 모르겠다.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판 TSMC는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을 단골로 확보한 덕에 반도체 산업 침체에도 순항하고 있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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