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중국 화웨이(Huawei)는 잘나가는 스마트폰 제조사였다. 삼성전자와 애플을 제치고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허나 미중 패권 다툼이 격해지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웨이는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는 물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화웨이는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과 독자 운영체제 훙멍(하모니)으로 맞섰으나, 미국 제재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도태됐다. 시장조사기관 스탯카운터(Statcounter)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 4.98%다. 이는 샤오미 등 타 중국 제조사에도 밀리는 수준이다.

허나 원래 화웨이는 통신장비 제조가 주력인 업체다. 미국의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에 큰 치명타를 입었으나, 통신장비 분야는 아직 유효하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Dell’Oro)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화웨이는 지난해 기분 전 세계 5G 통신 장비 시장에서 1위(28.7%)를 기록했다. 이는 2위인 에릭슨(15%)과 노키아(14.9%) 점유율을 더한 것과 비슷하다.
최근 화웨이는 자신의 장점인 5G 통신 기술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외신 CNBC는 화웨이가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오포(Oppo)에 자사 5G 네트워크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화웨이 측은 “5G 포함 필수 표준 특허를 포함해, 상호 특허 사용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오포는 다수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를 거느린 BBK그룹 산하 업체다. BBK그룹에는 오포를 비롯해 비보(Vivo), 원플러스(Oneplus)와 같은 유명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속해있다. 아이쿠우(iQOO), 리얼미(Realme) 등 각 제조사의 서브 브랜드 역시 BBK그룹 소속이다. 스탯카운터에 의하면 오포는 이들 중 가장 많은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4위)을 기록하고 있다.

화웨이는 총 10만여개에 달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5G 네트워크 특허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앞서 지적재산권(IP) 분석기관 그레이비(GreyB)는 화웨이가 보유한 5G 특허 수만 3000여개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화웨이가 지닌 5G 특허의 18.3%는 필수 표준특허(SEP)라고 알려졌다.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화웨이가 이번 계약 체결로 상당한 금전적 이익을 확보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포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꽤 많은 입지를 확보하고 있어서다. 외신 엔가젯(Engadget)은 오포와 비보가 지난 분기에만 스마트폰 총 5100만대를 판매했다며, 화웨이가 5G 기술 라이선스로 큰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화웨이는 지난 2019~2021년 4G 네트워크 특허 라이선스로 최대 13억달러(1조7000억원)를 벌어들였다. 지난해 화웨이는 지적재산권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기대치를 충족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단 라이선스 비용으로 얼마를 창출했는지,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화웨이는 이제 5G 특허로 더 많은 사용료를 받아내려 하는 듯하다.

이미 화웨이는 지난해 5G 네트워크 특허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화웨이는 자사 특허를 사용한 스마트폰 제조사로부터 기기 한 대당 최대 2.5달러를 받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굉장히 공격적인 가격 책정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가장 많은 관련 특허를 보유했는데도, 경쟁사 대비 저렴한 특허 사용료를 책정해서다.
예컨대 2018년 노키아는 자사 5G 표준특허 사용료를 기기당 최대 3.6달러로 설정했다. 에릭슨의 경우 기기당 라이선스비를 2.5달러에서 5달러로 설정했다. 이에 비하면 화웨이 5G 특허 라이선스 비용은 노키아 대비 약 30%, 에릭슨 대비 최대 절반 가까이 싸다. 이 같은 화웨이의 행보는 미국의 제재 이후 점차 확대됐다.
분명 화웨이가 5G 네트워크 분야에서 앞서가는 건 사실이다. 허나 아직 잠재적 불확실성이 남아있다. 미중 패권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두 국가 모두 5G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미국은 화웨이 5G 인프라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해왔다. 미국이 화웨이의 5G 특허 장사를 곱게 지켜만 볼지 모르겠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윤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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