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다. 익명성은 인터넷이 등장한 초기부터 사용자들에게 보장된 관례적 권리다. 익명성 덕에 사용자들은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허나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등장했다.
익명성의 명암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잘 드러난다. SNS 등장 이후 허위 정보를 담은 가짜 뉴스, 타인을 사칭하는 계정, 광고를 위해 활동하는 봇 계정 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수많은 허위 정보가 SNS를 통해 확산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 사태처럼 굵직한 사건마다 허위 정보가 기승을 부린다.
계정 사칭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사칭한 인스타그램 계정이 파문을 일으켰다. 사칭범은 이 회장의 일정에 발맞춰 SNS에 글을 게재하거나, 삼성전자 반도체와 제품 관련 게시물을 올리면서 진짜처럼 행세했다. 심지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을 사칭한 계정도 있었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SNS가 시작된 이래 수도 없이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문제는 이런 역기능이 전 세계 많은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페이스북 월간 사용자 수(MAU)는 29억명을 넘어섰다. 왓츠앱(20억명), 인스타그램(14억7800명), 트위터(4억3600만명) 사용자 수도 만만치 않다.
SNS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SNS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숏폼 콘텐츠 시대를 연 틱톡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정보 분석 단체 뉴스가드(Newsguard)에 따르면 틱톡 내 정보 중 20%는 허위라고 한다. 그럼에도 틱톡은 검색 시장 정통 강자인 구글마저 경계할 정도로 젊은 층이 정보 획득 창구로 선호하는 SNS다.
물론 SNS 업체들도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들은 가짜 뉴스, 사칭 계정을 걸러내는 수단을 마련하고, 모니터링 결과를 공표해왔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페이스북은 분기별 수억에서 수십억개 가짜 계정을 삭제했다. 예컨대 지난 2020년 4분기 페이스북이 삭제한 가짜 계정수만 13억개에 달한다. 같은 기간 삭제한 허위 정보도 1200만여건을 넘어선다.
‘인증 배지’도 SNS가 가짜와 싸우기 위해 꺼내든 수단 중 하나다. 인증 배지란 계정 사칭 문제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SNS 업계의 자구책이다. SNS를 하다 보면 계정 이름 옆에 파란색 체크 표시를 본 적 있을 테다. 이게 인증 배지다. 각 SNS가 인증한 계정이나 페이지에만 붙는 일종의 ‘진짜 표식’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파란 딱지’ 혹은 줄여서 ‘파딱’이라고 부른다.
인증 배지는 지난 2009년 트위터가 도입한 이래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다. 인증 배지는 SNS 사용자들에게 더 큰 신뢰를 주고, 사칭에 대한 우려를 줄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업체 계정이라면 검색 결과에서 눈에 띌 수 있어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 도움이 된다. 또 인증 배지가 달린 계정의 게시글은 비교적 뉴스로서 가치가 높게 느껴진다.
물론 인증 배지로 모든 가짜 계정, 사칭 계정을 거를 수는 없다. 익명성으로부터 시작된 부작용은 오래전부터 지속됐고, 아직까지 명확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증 배지는 사용자가 가짜를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용자 혼선을 줄여줄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는 의미다. 그렇다 보니 인증 배지는 아무나 받을 수 없다.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다.
인증 배지를 받으려면 각 SNS 업체의 자체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기준도 엄격한 편이다. 유튜브의 경우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오른 채널이 아니면 유튜브 인증 배지를 획득하기 어렵다. 첫 관문이 구독자 수 10만명 이상이다. 여기에 진위성과 완전성을 갖춰야 한다. 진위성이란 채널 본인 확인 절차며, 완전성이란 채널이 구성 요소를 잘 갖추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페이스북은 인증 배지를 신청하면 진정성, 고유성, 완전성, 유명성 네 가지를 기준으로 심사한다. 진정성과 완전성은 유튜브와 같다. 고유성은 계정의 주인이 가진 계정과 페이지가 여러 개가 아닌지 심사하는 기준이다. 유명성은 문자 그대로 계정이 얼마나 잘 알려져 있는지를 심사한다는 말이다. 틱톡 역시 인증 배지에 비슷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인증 배지를 선도한 트위터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파란 딱지를 부여했다. 트위터는 진위성, 유명성, 활성 상태 세 가지를 보며, 이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세워놨었다. 이 중 유명성 기준이 인상적인데, 활동 지역에서 팔로워 수와 멘션 수가 상위 0.05%에 속해야 한다. 신청 요건도 명확하다. 정부, 언론, 업체, 리그 주관 기관, 활동가, 인플루언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제 트위터는 홀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신뢰의 상징이자, 유명인이라는 증표인 파란 딱지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모든 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트위터를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표현의 절대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머스크는 인수 직후 트위터를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트위터 유료 구독 요금제 트위터 블루에 ‘인증 배지 끼워팔기’다. 원래 트위터 블루는 인증 배지와 관계없는 서비스였다. 핵심은 사후 편집이었고, 이외 기능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머스크는 인증 배지 획득 요건에 슬며시 ‘트위터 블루 구독’을 추가했다. 기존에 인증 배지를 단 계정도 트위터 블루 구독 없인 유지할 수 없게 했다.
변질된 트위터 블루 출시 이후 트위터 내 혼란은 가중됐다. 트위터 블루 구독 후 유명인이나 업체를 사칭하는 계정이 늘어났다. 일론 머스크 자신을 사칭한 계정도 수없이 발견됐다.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사칭 계정의 ‘무료로 인슐린을 제공한다’는 트윗으로 주가 하락을 겪었다. 결국 인플루언서들과 업체들은 트위터를 떠나기 시작했다.
플랫폼 신뢰도가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커지자 광고주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트위터는 광고 의존도(매출의 약 90%)가 높은 업체다. 그럼에도 머스크는 인증 배지 팔기를 중단할 생각이 없다. 줄어든 광고 매출은 자신이 경영하는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로 메꿨다. 25만달러(3억3000만원) 상당 트위터 광고 상품을 구매한 것. 거세진 비판에 일시 중단을 선언한 트위터 블루도 다시 제공(11월 29일)하겠다고 선언했다.
SNS는 승리를 예단하기 어려운 가짜와의 싸움을 오랜 기간 이어왔다. 트위터도 그랬다. 인증 배지뿐 아니라, 부적절한 계정과 게시글을 규제하는 길을 택했었다. 허나 머스크 인수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파문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 트위터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될까. 아니면 머스크가 뜻을 꺾을까. 아직 초기라 쉽게 추측하긴 어렵지만,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윤정환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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