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시장이 2분기에 이어 3분기까지, 지속적인 암흑기를 겪고 있다. PC 수요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침체, 공급망 차질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시장조사기관 국제 데이터 코퍼레이션(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이하 IDC)의 조사에 따르면 3분기 PC 시장은 전반적인 침체기에 빠졌다. IDC는 전년 대비 노트북과 데스크톱 PC 등의 출하량이 15%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제조업체 별로 살펴봤을 때, HP는 28%, 델(Dell)은 21%, 레노버(Lenovo)는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애플이었다. 모두가 하락세를 타는 와중에, 애플만 추세를 거슬렀다. 애플은 PC 출하량이 전년 동기 대비 40%나 증가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같은 날, 시장조사기관 캐널리스(Canalys)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3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은 약 18% 감소했다. 다른 주요 PC 제조 업체는 IDC 조사와 유사하게 대부분 출하량이 감소했다. 그런데, 애플만 출하량 증가(1.7%)를 보였다.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PC 시장 위축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어떻게 유일한 승자가 됐을까.
공급망 차질로 지연된 물량 뒤늦게 처리…출하량 상승으로 나타나
업계 전문가는 애플의 유일한 상승세엔 현실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IDC 분석가 지테시 우브라니(Jitesh Ubrani)는 지난 2분기 중국 봉쇄로 애플이 공급망 차질을 겪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애플은 현재 생산 공장의 중국 의존도를 완화하고자 인도와 베트남으로 생산 공장을 이동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생산 공장이 중국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을 막고자 주요 도시를 봉쇄하는 ‘제로코로나’ 기조를 취하고 있다. 현지 상황 때문에 애플은 극심한 공급망 차질을 겪었다. 해당 분기 정상적인 PC 생산이 어려웠다. 그렇기에 회사는 지난 분기에 처리하지 못한 물량을 뒤늦게 처리해야 했다. 3분기 출하량이 늘어난 것은 2분기에 출하하지 못한 물량이 다수 포함된 영향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공급망 문제는 차츰 완화됐다. 단순히 2분기 생산량이 일부 포함된 것만이 원인은 아니다. 애플의 상승세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애플 실리콘으로의 전환 성공도 영향…M2 맥북 출시도 상승세에 한몫
애플은 지난 수년간 맥(Mac)의 프로세서를 자체 칩으로 전환하고자 꾸준히 노력했다. 회사는 지난 2020년 11월, 맥 전용 프로세서인 M1 칩을 처음 공개했다. 이후 해당 칩이 탑재된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 맥 미니를 출시했다. M1 칩이 탑재된 애플의 PC 제품은 업계에서 윈도우 PC보다 우수한 성능을 뽐낸다고 인정받았다. 당시 회사는 애플 실리콘으로의 전환이 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현재 수년간 사용했던 인텔의 프로세서를 자체 칩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데 거의 성공했다.
자체 칩으로의 전환과 함께 지난 7월 출시된 새로운 M2 맥북 에어의 출시도 애플의 3분기 상승세에 영향을 줬다. 맥북 에어는 애플의 가장 저렴한 베스트셀러 노트북이다. 해당 모델에 이전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제공할 M2 칩이 탑재된다는 사실은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데 충분했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면서 구형 모델을 할인 판매하는 프로모션으로 소비자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M1 칩 탑재 모델도 충분히 강력한 성능을 선보이기에 구형 모델 할인 프로모션은 합리적인 가격에 우수한 PC를 구매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소비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소비 옵션이 됐을 것이다.
오늘날 상승한 PC 부품 가격 상승도 영향…애플 PC는 개별 부품 살 필요 없어
이외에도 업계에선 지속해서 상승하는 PC 부품 가격이 애플 PC 출하량 증가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애플의 노트북과 데스크톱 PC는 M1과 M2 칩으로 구동된다. 이는 애플이 설계한 단일 시스템 온 칩(SoC)으로 하나의 칩에 연산, 처리, 저장 등의 기능을 담은 것이다. 기존의 데스크톱 PC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보안 등을 위해 다수의 칩을 사용해야 했다. 따라서 여러 칩 간의 데이터 복사와 이동이 필수적이다. 반면 애플의 M1 칩과 같은 SoC는 하나의 칩에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어 성능과 효율이 강화되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최근 데스크톱 PC의 개별 부품의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특히 GPU 가격은 연일 고공행진이다. 지난달 GPU 시장 강자 엔비디아(NVIDIA)의 신제품 ‘엔비디아 지포스 40시리즈’가 공개됐다. 역시 논란이 된 것은 이전보다 100~200달러 오른 가격이었다. 소비자들은 우수한 성능은 그렇다 쳐도,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원래도 고가의 GPU 시세를 더욱 올려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수한 GPU 장치는 한정돼 있어 소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의 장치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애플의 PC는 이런 개별 부품을 각각 구매하는 수고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하나의 칩에 CPU와 GPU 기능이 모두 담겨 최대 효율을 내기 때문이다.
강력한 애플 생태계도 무시 못 해…긴밀한 기기 간 통합으로 작업 효율성 증대
맥북 사용자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다른 애플 제품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애플은 기기 간 연결성이 우수하다. 아이폰에서 맥으로 비디오나 사진을 에어드롭(AirDrop)해 쉽게 공유할 수 있다. 맥 PC 텍스트를 복사한 뒤, 아이폰에 붙여넣고 애플워치로 맥 잠금 해제도 가능하다. 이처럼 애플은 장치 간의 긴밀한 통합으로 작업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 이런 강력한 애플 생태계는 윈도우 PC가 따라 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PC 시장의 회복이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꽤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궁극적으로 애플의 상승세는 자체 칩을 향한 회사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애플 실리콘으로의 전환’을 향한 노력이 드디어 결과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한편, 애플이 내년 출시할 PC에 더욱 강력해진 M3 칩을 탑재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에 더 성장할 애플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이수현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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