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는 일이 불가능한 시절도 있었다. 길을 가다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공중전화 박스뿐. 지금은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때는 공중전화 앞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길 위에서 이메일을 보내고, 인터넷을 하고 은행 업무도 본다. 웬만한 것은 스마트폰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이렇듯 기술 발전은 우리 삶의 방식을 크게 바꿔놓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급부상하면서 우리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플랫폼에 AI가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유튜브가 그렇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피드는 AI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틱톡의 피드에 나타나는 다양한 추천 게시물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사용자의 평소 관심사를 AI가 학습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스마트 스피커, 스마트 TV 등 모든 장치가 더 똑똑해지면서 이에 탑재된 AI 음성 비서도 주목받고 있다.

AI 음성 비서의 급부상…육아 파트너로도 활용돼

아마존의 알렉사(Alexa)와 구글 어시스턴트, 아이폰에 탑재된 애플 시리(Siri) 등도 AI를 기반으로 한다. 이른바 ‘AI 음성 비서’로 잘 알려진 이들은 최근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대면 학습이 줄면서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갈 수 없었다. 게다가 점점 더 부모 세대도 젊어지고 있다. 이들은 아이의 대화 상대로 알렉사와 구글 어시스턴트, 시리 등의 음성 비서를 활용하고 있다. 취침 시간에 책을 읽어주거나, 언어 교육을 하는 등 상당한 도움을 주는 육아 파트너로 급 부상했다.

음성 AI 비서는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보조하고, 각종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서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24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육아에 제격인 셈이다. 그동안은 음성 인식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급 속도가 더뎠다. 그러나 기술 발달로 음성 인식 오류도 점점 더 줄어들었다. 실제로 구글은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로 2017년 음성 인식 정확도를 95%까지 끌어올렸다.

과거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생후 18개월 된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이 엄마, 아빠가 아닌 ‘알렉사’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AI 음성 비서와 ‘요즘 아이들’이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마존 측은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에 “알렉사는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또한 알렉사를 비롯한 자사 제품이 자폐증과 ADHD를 가진 아동을 비롯해 많은 아이들의 발달을 돕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알렉사와 같은 AI 음성 비서가 미친 영향력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가보다.

‘비언어적 소통의 부재’…무례한 아이로 자랄 가능성 있어


(출처 : Giphy)

27일(현지 시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는 과학 저널 ‘아동기 질병 아카이브(Archives of Disease in Childhood)’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애플의 시리, 아마존 알렉사, 구글 홈(어시스턴트) 등의 AI 음성 비서는 아동의 정서와 인지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연구는 특히 이러한 AI 음성 비서와의 상호 작용에서 비언어적 의사 소통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연구는 AI 음성 비서를 호출할 때 사용하는 “헤이 구글(Hey Google)”이나 “안녕 알렉사(Hi Alexa)” 등과 같은 신호는 디지털 기기를 의인화하는 명령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아마존 에코나 구글 홈과 같은 장치에 어떠한 요청을 할 때 “부탁한다” 또는 “고맙다”와 같은 공손한 말은 필요가 없다. 또한 목소리 톤이 무례하거나 불쾌하게 해석될 여부가 있는지 고려할 필요도 없다. 대화 상대의 기분도 고려 대상은 아니다. 결국 공감 능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AI 음성 비서와의 상호작용에는 인간 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회적 에티켓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지 능력에도 영향 미쳐…AI 음성 비서 도움, 신중하게 생각해야

연구의 공동 저자인 안몰 아로라(Anmol Arora) 박사는 음성 비서의 말을 자주 들으면, 단어와 음성을 결합해 문장을 만드는 능력을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음성 비서가 학습된 데이터 내에서만 답변할 수 있기 때문에, 제시할 수 있는 답변이 매우 한정적인 탓이다. 결국 장시간 음성 비서의 음성에만 노출된다면, 매우 협소한 어휘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습득할 기회마저 빼앗을 수 있다. 음성 비서는 매우 간편하게 요청한 정보를 빠르게 검색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확실히 유용하지만, 연구는 아동이 정보를 배우고 흡수하는 전통적인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질문을 하고, 정보를 요청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모두 중요한 학습 경험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과 대화하면서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추론을 배울 수 있다고 연구는 주장한다.

게다가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억양 차이 인식 능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는 아동의 연령이 낮을수록 특정 단어의 발음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단어의 뜻을 잘못 이해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맥락상의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을 결여시킬 수 있다.

AI 음성 비서, 편리한 생활을 가져왔지만…제한적인 형태로 사용해야

AI 음성 비서는 분명 우리 삶의 편리함을 가져왔다.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고, 일상 생활을 지원하며 다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나아가 노인부터 어린 아이까지 사회 동반자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하지만 AI 음성 비서와의 상호 작용에 관한 최근 연구는 음성 비서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한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결국 사회·정서적 발달이 중요한 시기에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드는 부모의 지도가 문제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적절한 지도 아래 제한적으로 활용한다면 상호작용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이수현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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