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대체불가능한토큰(NFT)은 디지털 자산 소유권을 증명하는 수단이다. NFT화 한 디지털 자산은 각각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또 이 디지털 자산이 본인의 소유라는 걸 증명해 주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에 디지털 예술 작품부터 시작해 게임까지 NFT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게임은 아이템, 아바타, 스킨 등 NFT를 접목할 곳이 많다. 이에 몇 년 전부터 NFT 게임이라는 개념과 가상자산 거래로 수익을 올리는 ‘돈 버는 게임(Play to earn·P2E)’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스타트업 스카이 마비스(Sky Mavis)에서 개발한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가 대표적이다.
엑시 인피니티의 성공은 블록체인 기술과 게임을 결합해 어떤 경제적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후 주로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엑시 인피니티 성공 모델을 뒤따르는 기업들이 줄지었다. 블록버스터급 게임을 만드는 유명 게임사들도 비슷했다. 이들은 NFT 열풍에 편승해, 수익을 올리려 시도했다.
그러나 최근엔 유명 게임사들도 NFT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길 주저하는 모습이다. 아예 NFT를 비롯해 블록체인 기술과 거리를 두겠다는 곳도 나타났다. 지난 20일 마이크로소프트(MS) 산하 모장(Mojang)은 마인크래프트 내 NFT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마인크래프트는 출시 이후 2억개 이상 판매된 인지도 높은 게임이다. 사용자 수만 1억명 이상으로 알려졌다.
모장 측은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마인크래프트 프로그램이나 서버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없고, 게임 내 콘텐츠를 NFT로 만드는 것이 금지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마인크래프트 안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할 의향이 전혀 없고,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방향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마인크래프트에 NFT를 금지한 이유는 뭘까. 모장 측의 주장은 세가지로 압축된다.
1. NFT가 고유한 가치를 지닌 디지털 자산이기에, 유저 간 차별을 조장한다.
2. NFT가 투자·투기 위험성이 있어, 게임의 본질을 해치고 플레이하는 즐거움을 저해한다.
3. 제3자가 만든 NFT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을뿐더러, NFT에 대한 평가는 과도하게 부풀려졌다.
즉 모장은 NFT를 신뢰할 수 없는 요소로 단정한 것이다. 모장의 생각은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가 취해온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사업부 총괄 필 스펜서(Phil Spencer)는 일부 NFT게임이 착취적 요소가 있다며 “모든 NFT 게임이 그럴 필요는 없고 우린 그런 콘텐츠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지난달 암호화폐와 NFT를 두고 ‘더 큰 바보 이론(Greater-Fool Theory)’에 근거한 가짜라고 했다. 더 큰 바보 이론은 부풀려진 자산을 향후 누군가 더 비싸게 사갈 것이라 믿고 투자하는 현상이다. NFT 열풍처럼 투자 심리가 클 때 발생한다.
마인크래프트처럼 NFT에 우호적이지 않은 게임 업체가 있다. 세계 최대 PC게임 플랫폼을 운영하는 밸브(Valve)다. 밸브는 지난해 말 자사 플랫폼 안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쓴 게임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2월 밸브 최고경영자(CEO) 게이브 뉴웰(Gabe Newell)은 블록체인은 훌륭한 기술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국내선 친숙한 블리자드(Blizzard)도 NFT에 뜻이 없다고 표명했다. 마이크 이바라(Mike Ybarra) 블리자드 대표는 지난 4월 “아무도 NFT를 다루지 않고 있다”고 트윗했다. 블리자드가 NFT에 관심이 있다는 보도로 논란이 발생하자, 직접 진화에 나섰던 것.
다른 유명 게임사들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렉트로닉 아츠(EA) CEO 앤드류 윌슨(Andrew Wilson)은 “아이템 수집은 우리 게임에 중요한 요소지만 NFT가 그렇게 될지는 지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가(Sega)는 NFT 분야 투자 의향을 밝힌 지 한 달 만에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동시에 조용히 ‘세가NFT’라는 상표를 등록하면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퀘어 에닉스(Square Enix)도 마찬가지다. 회사 CEO 마쓰다 요스케는 올해 신년 인사에서 2021년을 ‘NFT의 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발표한 실적 발표에선 매각 수익을 NFT나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는 것보다 탄탄한 지적재산권(IP)을 만드는 데 쓰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스퀘어 에닉스가 NFT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닌 듯하다. 회사는 며칠 전 파이널판타지 25주년 기념 NFT 피규어를 공개했다.
내로라하는 게임사들이 왜 NFT 게임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는 걸까. 먼저 유저들이 NFT에 호의적이지 않아서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유고브(YouGov)와 컨설팅 업체 글로반트(Globant)가 성인 PC·비디오 게이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81%가 NFT 구매 경험이 없었다. 전체의 40%만 메타버스나 블록체인 게임에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 외신 프로토콜(Protocol)은 이를 언급하며 “블록체인 게임 시장에 뛰어들려했던 개발자들에게 좋은 시기가 아니다”고 했다.
유저들의 반발로 NFT 도입이 무산된 사례도 있다. 게임사 GSC 게임 월드는 자사 게임 스토커2에 NFT 기반 메타버스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저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보내온 피드백을 바탕으로 스토커2에 NFT와 관련된 모든 것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며 “유저들의 이익이 최우선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개발사 팀17(Team17)도 올해 웜즈에 NFT를 도입하려 했으나 같은 이유로 철회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은 NFT 게임의 문제점을 몇 가지 제시했다. 연구소는 게임 내 NFT 자산 거래가 있으려면 새로운 유저 확보에만 매진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렇게 되면 질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신 유저 확보를 위한 잘못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NFT 게임은 해킹으로 유저가 손해를 입더라도 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대량 유저 이탈이나 서비스 종료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엔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이 같은 위험 요소가 있기에 일부 게임사들이 가상자산을 자사 게임에 도입하는 걸 꺼리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NFT를 금지한 밸브를 꼽았다.
NFT 게임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무엇일까. 게임 개발사들로 구성된 독립 단체 클리메이트 리플레이(Climate Replay)는 몇 가지 단서를 제안했다. 그러려면 NFT 게임은 유저들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해야 하며, 투기로 인한 가치 창출을 유도하는 인위적 희소성을 배제해야 한다. 또 불확실성이 큰 암호화폐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고, 사용자 차별을 조장하지 말아야 하며, 즐거움이라는 게임의 본질을 흐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윤정환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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