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4)진흙과 왕겨로 깨끗한 물을…세라믹 도자기 정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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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산업, 즉 농업이 산업 중심인 국가에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나 빈민국의 경우 물을 공급하기 위한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캄보디아와 과테말라 등이 대표적이다.

(사진=유니세프)

물을 구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물을 농사에 활용하다 보니 식수 역시 부족하다. 그래로 살려면 물을 마셔야 한다. 깨끗하지 않은 지하수나 강물을 어쩔 수 없이 식수로 마시는 이유다.

캄보디아에서는 농촌 지역 60%만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10명 중 4명은 오염된 물을 그대로 마신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매년 2000명의 캄보디아 아이들이 설사병으로 죽는다. 약국에서 약만 먹어도 치료할 수 있는 설사병으로 수천 명의 아이가 사망하는 것이다. 오염된 식수와 위생 문제로 사망하는 캄보디아인은 한해 1만 명으로 추산된다.

과테말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속된 가뭄으로 지하수도 말랐다. 물 공급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식수난에 허덕이는 국가 중 하나다. 이러한 물 부족 지역에서 필요한 ‘적정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세라믹 정수기

물이 부족하더라도 주변에 진흙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진흙에 왕겨나 톱밥 등을 섞어 도자기로 구워내면 훌륭한 정수기로 재탄생할 수 있다. 바로 세라믹 정수 필터 혹은 세라믹 정수기다.

점토 등을 고온에서 구워 낸 세라믹이 오염수를 정수할 수 있다는 개념은 1820년대 등장했다. 영국의 사업가이자 발명가인 헨리 덜튼이 현대적 방식의 세라믹 정수 필터를 만들었다. 1835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개인적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그에게 세라믹 정수 필터 제조를 요구하기도 했다.

페르난도 마자레이고스

세라믹 정수 필터가 적정 기술로 주목받게 된 건 과테말라의 과학자 페르난도 마자레이고스가 진흙을 활용한 세라믹 도자기 정수기를 만들었을 때다. 1981년 페르난도 마자레이고스 박사는 진흙을 구워 도자기를 만들고 여기에 콜로이드 은 페인트를 칠해 소독 효과를 높인 세라믹 정수기를 개발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진흙을 고온에서 구워내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 이 도자기에는 미세한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매우 작아서 박테리아 등 세균이 빠져나올 수 없다. 아주 조금씩 물은 빠져나올 수 있지만, 박테리아는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테리아가 만약 세라믹 정수기를 통과하더라도 소독 효과가 뛰어난 콜로이드 은과 만나게 되면 박멸된다. 도자기 정수기의 박테리아 제거 효과는 99.99%에 달한다고 한다.

페르난도 마자레이고스가 개발한 세라믹 정수기를 포터스 포 피스의 론 리베라가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재설계했다. 이후 2007년 기준으로 14개국 16개 소규모 공장이 운영됐다. 50만명 이상이 세라믹 정수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용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캄보디아에서도 세라믹 정수기가 보급되고 있다. 미국 비정부기구(NGO) 리소스 디벨롭먼트 인터내셔널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경 없는 엔지니어회가 공동 개발한 제품이다. 왕겨를 섞은 진흙 반죽을 800도 이상에서 초벌구이 한다. 왕겨가 탄화되면서 도자기에 기공이 생기고 자연스레 필터가 구현된다. 이 정수기는 한 시간에 2리터 수준의 오염수를 정수할 수 있다.

세라믹 정수기가 각광받는 건 적정 기술 조건을 대부분 만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재료를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진흙과 왕겨, 톱밥 등만 있으면 된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공장이 필요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개별적으로 도자기를 구워내 물통에 올려놓고 사용하면 된다.

양산 제품 가격도 저렴하다. 캄보디아에서는 각 가정에 10달러가 조금 넘는 가격으로 세라믹 정수기를 보급한다. 과테말라에 보급된 세라믹 정수기 가격도 10달러 안팎이다. 수명은 2~3년 정도지만 5달러 안팎의 도자기만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유지 관리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또 현지 공장 설립으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즉 적정기술 요건인 △현지화 △지속 가능성 △환경친화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현지 문화와 경제적 상황에 맞게 세라믹 정수기를 저렴하게 공급했다. 또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토양 등의 재료로 지속 가능한 생산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현지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친화적이다.

이러한 세라믹 정수기의 적정기술로써 가치에 주목해 우리나라도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세라믹기술원은 지난해 캄보디아에 하루에 약 4000리터(1000명분)의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한국형 세라믹 필터 정수장을 준공했다. 앞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보급형 세라믹 필터와 가정용 정수기를 개발해 보급한 바 있다. 캄보디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야자 껍질을 진흙에 넣고 구운 것이 특징이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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