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31)’중력’이 있어 어둠이 무섭지 않아요

- Advertisement -

19세기 전등이 탄생하기 전, 수백여년 동안 세상을 밝히는데 석유등이 쓰였다. 오늘날 어둠을 물리쳐 내는데 전등만한 것이 없지만, 석유등은 사라진 건 아니다. 전력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곳에서는 여전히 등유 램프로 불을 밝힌다. 전선을 매립하거나 전신주를 세우고,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기름을 유통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가의 빈민촌에서는 여전히 등유 램프가 밤마다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친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요즘, 등유 램프의 한계는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여전히 10억명 이상이 전등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은 질 나쁜 등유가 연소하면서 내뿜는 연기를 흡입한다. 폐 손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폐쇄된 공간에서 이러한 등유 램프의 부산물은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는 것과 유사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등유 램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로 인해 백내장 등 안구 질환을 앓을 수 있다. 화재 위험도 빼놓을 수 없다.

친환경 흐름에서도 벗어난다. 등유 램프 하나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소량일 수 있지만, 집단 활용 시 이산화탄소 발생 규모는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조명을 위한 등유 연소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2억6400만톤 정도로 추정된다. 여력만 된다면 이제 ‘등불 시장’에서 퇴출 시킬 법도 하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써왔던 등유 램프를 대체하고자 고민한 회사가 디씨와트(Deciwatt)다. 석유 연료를 대체하면서도 전기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등불로 어둠을 밝히려고 시도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디씨와트가 처음이 아니다. 수많은 비정부기구나 사회적 기업이 전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대체 등불’을 고안했다. 대표적인 것이 태양광으로 LED을 밝히는 것이다. 친환경적이며 등유 램프에 견줘 안전하다.

디씨와트의 고민은 단순히 ‘빛을 밝힌다’에 그치지 않았다. 접근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등유를 사기 위해 가계 수입의 20~30% 가까이 사용하는 이들에게 태양광 전등은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햇빛이 있을 때만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LED 기기를 밤에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배터리에 전기를 저장해야 한다. LED 가격이 아무리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까지 탑재한 제품은 개발도상국 빈민 가구에게 접근성이 떨어진다.

비용 측면에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태양광을 대신할 ‘원료’를 구해야 한다. 디씨와트가 떠올린 건 ‘중력’이다. 중력은 태양과 달리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중력은 작용한다. 중력을 잘 활용하면 쉽고 저렴하게 전기를 생산해 LED 등을 켤 수 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그래비티 라이트’다.

그래비티 라이트는 물건이 아래로 떨어지는 중력의 힘을 이용해 발전한다. 구성품은 모터 박스와 주머니,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케이블이다. 주머니에 내용물을 채워 약 10~12kg을 만든다. 내용물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도 적당하다.

무게를 맞춘 주머니를 케이블로 모터 박스와 연결한다. 케이블 접합면이 발전 모터와 맞물려 회전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스프로킷이라고 하는데 체인 기어를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모터 박스를 높은 곳에 고정한 뒤, 주머니가 달리지 않은 한쪽 케이블을 잡아당긴다. 다른 한쪽 케이블이 잡아 당겨져 주머니가 모터 박스 쪽으로 올라간다. 이후 태엽이 감기 듯 천천히 주머니가 하강한다. 여기서 중력이 작용해 ‘그래비티 라이트’다. 주머니가 내려가면서 케이블이 직류 발전 모터를 가동하고 전기를 만들어 낸다. 작동 과정은 꼭 고정 도르래를 닮았다.

LED 등은 주머니가 내려오는 동안 약 20~30분 정도만 켜진다.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을 써가며 등유를 태워야 했던 이들에겐 유용한 시간이다. 연료를 구입하기 위한 추가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저 주머니 반대쪽 케이블만 잡아당기는 수고를 해주면 될 뿐이다.

디씨와트는 처음부터 등유 램프를 대체하기 위해 그래비티 라이트를 고안했다. 등유 램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빛을 내면 되는데, 그래비티 라이트의 빛 밝기는 최대15루멘 정도다. 그래비티 라이트와 연결해 빛을 다른 영역을 확산 시켜주는 ‘샛 라이트(Sat Light)’라는 액세서리도 있다.

디씨와트는 2012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인디고고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그래비티 라이트를 개발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초기 목표는 5만5000달러였다. 펀딩을 개시하고 두 달도 안 돼 40만달러가 모였다. 목표액의 700%가 넘는 금액이다. 인디고고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그래비티 라이트는 타임지로부터 2013년 25대 최고의 발명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모금에 성공한 디씨와트는 26개국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현장 테스트 결과 참가자 90%는 등유 램프 대신 그래비티 라이트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양산에 들어가 전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디자인과 케이블 형태를 개선했다. 두 번째 버전 역시 40만달러 펀딩에 성공했다. 디씨와트는 케냐를 그래비티 라이트 생산 거점으로 두기로 하고 자선단체 등으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기도 했다.

중력이라는 힘을 이용해서 빛을 밝힌다는 아이디어로 주목받은 그래비티 라이트. 이 적정 기술은 성공했을까. 결론적으로는 그래비티 라이트는 ‘과정’이었다. 그래비티 라이트는 관심 대비 세상을 밝히는데 크게 공헌하지 못했다. 디씨와트가 제품 개발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은 결과, 빛을 밝히는 20~30분은 생각보다 짧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USB 포트를 통해 여러 기기를 충전하고 싶다는 요구도 있었다. 그래비티 라이트는 충전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했다.

결국 디씨와트는 새로운 접근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중력을 이용하지 않고 케이블을 직접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빛을 밝히는 시간을 늘렸다. 1분 노동으로 약 2시간 정도 빛을 밝힐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 등 기기를 충전할 수 있고 태양광 패널도 액세서리처럼 추가 탑재할 수 있다. 그러나 눈길을 사로잡았던 ‘중력(그래비티)’은 자취를 감췄다. 이름은 당장 빛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우 라이트(Now light)’다.

icon-alert

ic_multitracktest

네이버 동영상 플레이어

재생시간, 이 동영상의 길이는 9초 입니다.

화질 선택 옵션

화질 선택 옵션

나우라이트

양산품은 초기 아이디어와 달리 많이 변했다. 그래비티라는 이름이 조금 무안해졌지만, 그래비티 라이트는 적정 기술계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 준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중력으로 어둠을 몰아낸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한 듯하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 Advertisement -

Related Stories

Enable Notifications    OK No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