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인지 확인 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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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용하던 서비스입니다. 로그인을 시도하는데 평소 나타나지 않았던 이상한 그림이 뜨네요. 그러더니 뜬금없이 그림 속 자동차를 찾으랍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바둑판처럼 격자로 구분된 조각 안에 자동차를 찾아 클릭 또 클릭합니다. 살짝 걸쳐있는 건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느낌 가는 대로 일단 포함시켜줍니다. 알 수 없는 지시를 따르고 나면 비로소 원래 하려던 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험은 아닙니다. 웹 서핑 좀 해봤다는 사람이라면 수십 번도 더 봤을 테니까요. 이건 괜한 골탕먹이려 만든 것도 아니고 사용자가 심심할까 봐 제공하는 놀이도 아닙니다. 사실 1분 1초가 급한 우리에게는 귀찮은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접속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지는 못할 겁니다.

번거로운 이벤트가 가진 주된 목적은 단 하나, 당신이 인간인지 알아보겠다는 의도입니다. 고작 틀린 그림 찾기 같은 걸로 어떻게 인간을 구별해내는지 의아해집니다. 그보다 앞서 왜 이런 장치를 만들어야 했는지부터 알아내는 게 순서라는 생각도 드네요. 미리 말하자면 기술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출처:The Verge)

어느 순간 인간과 컴퓨터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걷는 것만으로도 기특했던 때론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던 로봇은 이제 두 다리로 잘도 뛰고 텀블링을 합니다. 웬만한 사람보다 더 나은 운동 신경을 자랑하죠. 인공지능(AI)은 인간보다 똑똑해질 수 없고 뇌가 있는 것도 아니니 생각도 못 한다는 유구한 착각은 깨진 지 오래입니다. 이미 체스, 바둑, 스타크래프트까지 세계 최고수를 차례로 꺾으며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죠. 모두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최근에는 기사를 쓰고 코딩도 한다니 다음에는 어떤 일을 섭렵해나갈지 이제는 가늠조차 안 됩니다.

한동안 기술의 혜택은 달콤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인간 행세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 깨닫게 됩니다. 무언가 잘못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품으면 특정 명령을 수행하는 자동프로그램인 봇(Bot)을 가지고 웹사이트 가입 회원수를 늘리거나 웹사이트를 먹통으로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정체가 의심되는 광고나 댓글을 남기는 일이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매우 저렴한 가격에 올라온 물건을 구입하려고 시간 맞춰 들어왔지만 몇 초 만에 매진됐던 것도 당신의 행동이 느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술을 활용해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인체 하지만 실상은 로봇입니다. 인간을 속이려 들고 떳떳하게 “내가 로봇이다” 말하지 못하는 정체가 좋은 일을 할 리 없습니다. 공정한 질서에 균열이 생기는 건 한순간이었고 인간의 속도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봇이 인터넷 세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하자 대책 마련이 필요해졌습니다. 곧 새로운 기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인간 탐지기 ‘캡차’의 등장

다 지켜보고 시간이 지나서 꺼낼 수 있는 말이지만 발전하는 문명이라면 언젠가는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일과 운명처럼 맞닥뜨려야 합니다. 로봇을 악용하는 악의 무리를 물리쳐야 하거든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에 소속된 연구원들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봇을 안 좋은 의도로 사용하면 어떤 암담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잘 알고 있었죠. 아이디어는 점점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로봇을 구분해내고 인간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쉽지만 자동화된 프로그램은 통과하지 못하는 그런 기술을 생각하다 2000년에 ‘캡차(CAPTCHA)’를 만들게 됩니다.

앨런 튜링의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영문명인 CAPTCHA는 ‘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를 줄인 말입니다. 굳이 머리 아픈 단어를 다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어 두 개만 확실히 잡으면 됩니다. ‘Turing test’, 우리말로 ‘튜링테스트’라고 합니다. 튜링테스트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실험의 이름입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 규칙을 해독해내면서 연합군이 승리를 가져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1950년 10월 튜링은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라는 역사적인 논문을 발표합니다. 튜링테스트는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테스트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인간과 기계를 구별해내고 만약 기계를 인간으로 착각하게 된다면 기계가 인간 지능을 가졌다고 봐도 좋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되는 시간, 단 5분이면 판가름이 났습니다. 이후 튜링테스트는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의미 있는 실험으로 받아들여졌고 현재도 튜링을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부르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이름에서 발견한 대로 캡차는 튜링테스트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캡차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먼저 누군가가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그러면 서버에서는 무작위로 선정한 문자나 숫자를 조합해 캡차를 생성합니다. 그냥 조합하면 쉽게 읽힐 테니 문자와 숫자를 이리저리 뒤틀어놓고 일부분을 가려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죠. 로봇은 알아볼 수 없지만 서버는 직접 조합했으니 답을 아는 상황입니다. 요청이 들어오면 이렇게 공들여 만든 캡차를 띄웁니다. 서버가 알고 있는 답과 작성된 답이 일치하면 인간이라고 판단하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해줍니다. 이게 캡차의 전 과정입니다.

캡차

여담이지만 캡차를 개발한 연구원 루이스 본 안(Luis von Ahn) 은 훗날 소위 대박을 칩니다. 지금은 캡차보다는 다른 걸로 더 유명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이름, ‘듀오링고(Duolingo)’. 그가 만든 듀오링고는 2012년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최근 듀오링고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고 시가총액 50억 달러를 육박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듀오링고의 목표가 돈이 없어도 누구나 개인 교사의 지도를 받는 경험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을 보면 기술로 세상에 도움을 되겠다는 자세가 지켜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캡차만으로도 스팸을 막아내는 시절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빈틈이 드러났습니다. 기술을 개선해야 할 명분이 커질 때쯤인 2007년 ‘리캡차(reCAPTCHA)’가 등장합니다. 검증은 정교해졌고 의미 있는 작업도 하나 추가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리캡차의 검증 방식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리캡차

캡차가 한 개의 문자를 입력하게 했다면 리캡차는 두 개를 입력받습니다. 왼쪽에 나타난 단어와 오른쪽에 나타난 단어를 함께 기재하게 합니다. 오른쪽에 나타난 단어는 기존 캡차와 동일하다고 보면 됩니다. 서버에서 답을 아는 단어거든요. 이 단어를 정확하게 입력해야지 인간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왼쪽에 나타난 단어는 정체가 뭘까요? 바로 고문서에서 발췌해온 단어입니다. 오래돼 컴퓨터도 판독이 어려운 단어를 선별해 보여주고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 단어를 복원해내는 장치를 삽입한 것이죠. 서버에서도 이 단어를 알지 못하기에 인간으로 판단된 사용자가 입력한 단어 중에서 가장 많이 작성된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렇게 확보된 데이터는 도서나 고문서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활용됩니다. 이용자도 모르는 사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의도하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 고고학 프로젝트의 일원이었던 셈입니다. 캡차 이용하는 시간을 가치 있게 활용하라는 참뜻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구글에서는 캡차를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결국 2009년 캡차를 사들이죠. 구글은 캡차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와중 캡차와 리캡차를 해킹하는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2014년 구글은 기존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노캡차 리캡차(noCAPTCHA reCAPTCHA)’를 내놓습니다.

노캡차 리캡차

검증은 이름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노캡차로 인간을 찾아내고 긴가민가하면 리캡차로 재검증에 들어갑니다. 리캡차까지 통과하지 못하면, 이제 당신에게는 로봇이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노캡차는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I’m not a robot.)’라는 메시지와 함께 옆에 체크박스를 띄웁니다. 아마 익숙할 거라고 봅니다.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 체크박스를 클릭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 전부입니다. 과연 이걸로 인간과 기계를 구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하지만 뒤에서는 마우스의 움직임, 체크 속도 등을 파악해 인간이라면 응당 보여줄 행동을 식별해냅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인간 같아 보이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리캡차로 넘어갑니다.

(출처:The Atlantic)

리캡차는 이미지를 선택하라는 문제를 던집니다. 이미지를 던져주고 제시한 사물을 찾도록 지시합니다. 고양이, 자동차, 신호등, 교통표지판 등 종류는 다양합니다. 정확한 답을 선택하면 인간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했다지만 치와와의 얼굴과 초코머핀을 구별해내는 일도 버거워하는 게 현실입니다. 반면 인간에게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죠. 평범한 이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잘 활용했다고 봐야겠죠.

유독 도로에서 자주 마주치게 될 사물을 찾으라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에서는 자율주행차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자율주행차는 이동수단의 혁명을 가져올 대표적인 미래 첨단 산업입니다. 구글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고 있죠. 자율주행차에게 요구되는 핵심 기능은 주변환경 인식입니다. 사람이 길을 건너는지 신호가 바뀌었는지 달려도 괜찮은지 매 순간 판단하려면 주변 사물의 존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자율주행차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이 있을 겁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기업에서는 자율주행 테스트를 한동안 멈출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 이미지는 실추되고 사람들의 비난도 감수해야하죠. 경쟁 기업이 치고 나가는 것도 지켜봐야만 합니다. 그래서 리캡차에서 도로와 관련된 사물이 자주 나오는 겁니다. 구글은 인간이 손수 이미지에 사물을 표시해준 데이터를 가지고 자율주행 인공지능을 학습시킵니다. 딥러닝을 통해 규칙도 세웁니다. 사물 인식 능력이 더욱더 정교해질수록 자율주행차는 주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습니다. 수집된 데이터는 구글 지도의 정확성을 높이는 작업에도 사용됩니다.

자주 안 봐야 예쁘다, 캡차도 그렇다

캡차에 향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긴 합니다. 캡차가 제시하는 검증 난이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자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해서 시각장애인은 로봇으로 취급하느냐는 따가운 질책도 받아야 했습니다. 캡차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도 등장했지만 여전히 사용이 편리하진 않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나이, 교육, 언어 상관없이 모두가 캡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도 로봇은 이해하지 못하게 해야 하다 보니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캡차가 몰고 오는 다른 부수적인 효과를 알게 되면 마냥 몰아세우기도 힘듭니다. 처음에는 몰랐을 겁니다. 캡차가 나오고 얼마 못 가 캡차를 해킹하는 기술이 나온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가만 보면 인간과 기계를 구별해내려는 기술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캡차는 더 강해졌습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죠.

캡차가 인공지능 업계에 새로운 이슈를 던지고 결국은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당혹스러운 해킹 기술이 인간과 기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면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돼 다시 앞서 갑니다. 따라오면 다시 도망가고를 반복하니 긍정적인 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리캡차도 리캡차v3, 리캡차 엔터프라이즈로 발전 중입니다.

이제 반복해서 캡차를 띄우면 인간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는 합리적 의심에 살짝 억울한 감정이 드는 부작용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반대로 귀찮게만 느껴지던 캡차의 순간에도 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인류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자신을 달랠지도 모르겠네요.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는 그날이 오면 여러분도 기술 개발에 이바지했다며 뿌듯해해도 좋습니다.

캡차의 미래는 캡차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겁니다. 캡차라는 기술의 씨를 말려버린 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불편함을 강요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검증이 이뤄질 테니까요. 기술도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날이 어서 찾아오기를 기대합니다. 최근 몇 번 로봇 취급을 받았더니 갖게 된 작은 바람입니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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