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쓰레기 분쇄기 다시 ‘불법’?··· 비양심이 부른 결말

- Advertisement -

일요일 저녁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진동한다. 에디터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일요일마다 분리수거를 하는데, 음식물쓰레기도 같이 가지고 나와 버리는 주민이 많다 보니 조금씩 새어 나오는 악취가 엘리베이터에 누적된 것이다. 이럴 때면 음식물쓰레기의 냄새를 없애거나 아예 배출할 일이 없게 분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하는 제품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싱크대 하부에 설치할 수 있는 음식물쓰레기 분쇄기로, ‘디스포저(Disposer)’라고 부른다. 디스포저를 설치한 싱크대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면 고형물이 분쇄기를 거치며 잘게 갈리고, 물과 섞여 하수구를 통해 배출된다. 악취나 벌레가 꼬일 일도 없다.

◆다사다난했던 디스포저의 역사

주방용 디스포저 (출처 : insinkerator)

디스포저는 꽤 오래전부터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 디스포저가 판매되기 시작한 건 1985년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80년대 전국 하수도 보급률은 8.3%에 그칠 뿐이었다. 이 상태에서 음식물쓰레기를 그대로 흘려보내면 몇 안 되는 하수처리 시설에 무리를 줄 여지가 있었다. 결국 1995년 환경부는 디스포저 수입과 제조,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2000년대 들어 하수 시설 수준이 향상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2007년 환경당국은 디스포저를 다시 허용해야 할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2008년 서울시는 일부 아파트에 디스포저를 설치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노원구에서는 미생물이나 약품을 이용해 1차 정화하는 배수 전처리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처리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됐다. 반면 강서구에서 실시한 직배출 방식, 영등포구에서 실시한 병합처리 방식(화장실 오수와 함께 배출하는 방식)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이후 2012년에 음식물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면서, 디스포저도 환경부 인증을 받으면 판매·사용할 수 있게끔 규제가 완화됐다. 디스포저를 통해 분쇄한 음식물을 전량 흘려보내지 않고 80% 이상 회수할 수 있으면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디스포저 금지법 다시 솔솔··· 왜?

그런데 지난 5월 또다시 디스포저를 금지하자는 법이 발의됐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월 21일 디스포저의 수입·제조·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하수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분쇄물을 전부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없다 (출처 : EASTONY)

원칙적으로는 디스포저로 처리한 음식물쓰레기의 80% 이상을 사용자가 회수해 따로 배출해야 한다. 하지만 분쇄된 음식물쓰레기를 전량 하수도에 흘려보내는 사용자들이 나타났다. 음식물쓰레기를 따로 모아두거나 버리는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디스포저를 구매했는데, 따로 모아 버리는 과정은 거의 같은데다 디스포저까지 관리해야 하니 구매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간파한 업체에서는 제품을 개조하는 일을 감행했다. 물론 불법이었다. 분쇄물이 하수도로 흘러가지 못하게 막는 거름망을 제거하거나 간격을 넓혔다. 얼마 못 가 아파트 하수관이 막혀 저층 세대에 역류가 일어나고 하수처리장의 오염 부하가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윤 의원실은 전국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가 전부 하수도로 배출되면 오염부하가 약 27% 증가하며, 이를 소화할 수 있는 하수처리장 설비를 늘리는 데에만 약 12조 2천억 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부 사용자의 민폐? 비양심이 부른 ‘금지’

주방용 디스포저 (출처 : Global Engineering & Waste Management)

2020년 7월 한국소비자원이 디스포저 판매 사이트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인증 받은 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는 4229곳, 불법 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는 430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불법 개·변조 제품(60곳), 인증이 취소된 제품(99곳), 비인증 제품(27곳), 인증을 받지 않은 해외직구 제품(244곳)이 포함돼있다.

판매처 수로만 따지면 정상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약 10배가량 많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실제 유통되는 불법 제품은 예상보다 많을 수 있다. 정상 제품을 판매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설치 기사가 별도로 개조 작업을 하거나 개인이 직접 해외직구하는 경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우회로가 있다.

환경부 인증을 받은 시제품과 실제 판매 제품에 차이를 두는 경우도 있다. 환경부가 적발한 업체 중에는 거름망을 고정시킨 제품으로 인증받은 뒤 실제로 판매하는 제품에서는 거름망을 제거할 수 있도록 불법 개조한 경우도 있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디스포저 판매량은 공식 집계된 것만 약 18만 대 정도다. 하지만 이중 정상적인 제품이 얼마나 되는지,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불법 판매 사례는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방도는 없다. 일부 양심 없는 사용자와 업체 때문에 정상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업계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찬반 팽팽··· 합의점 찾을 수 있을까

디스포저 금지법 관련 개정 법률안은 8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됐다. 환경부와 각종 환경단체에서도 동의하고 적극 지지하는 사안인 만큼 긍정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발의안이 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본회의에 상정돼 국회의원의 투표를 거친다. 여기서 의결된 법안은 정부로 이송된 뒤 15일 이내에 공포되고, 공포일로부터 20일이 지나면 법률로써 효력을 발휘한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법 개정 공포 1년 뒤부터 모든 디스포저의 판매를 금지할 예정이다.

금지법이 통과된다면 1995년처럼 디스포저의 수입·제조·판매가 전면 금지된다. 업계에서는 생존이 직결된 문제인 만큼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막무가내식 금지 대신 불법 제품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감독을 요구했다. 하지만 관계 부처에서 디스포저를 설치한 모든 장소를 지속적으로 감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디스포저 금지법을 발의한 의원과 관계 부처에서는 완충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윤준병 의원은 기존에 판매된 제품은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특례로 허용하되 신규 구매·설치를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디스포저의 내구연한은 4~5년 정도다. 그동안 관련 업계 종사자와 제품 사용자들이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주고 지원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지난 6월 관련법을 재차 발의한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기존 사용자에 한해 3년간 디스포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 기간을 주고, 이후 모든 디스포저의 사용을 금지하자는 의견을 냈다.

환경부는 디스포저 관련 업체들이 유사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게끔 자금과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제시한 대안으로는 음식물쓰레기 감량기가 있다. 이는 음식물쓰레기를 건조시켜 부피와 냄새를 줄이는 기계로, 이번에 발의한 금지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이병찬

tech-plus@naver.com

- Advertisement -

Related Stories

Enable Notifications    OK No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