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내 기계 내가 수리하겠다는 데…왜 이리 어려운거지

    - Advertisement -

    무언가를 고쳐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자 기기 정도가 아니더라도 장난감이나 문구류 정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봤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잘 나오지 않는 티비를 손으로 때려 본 일도 원래 멀쩡하던 처음으로 돌려 놓고자 하는 당신의 강렬한 의도가 발휘된 셈이다.

    하지만 이제 고장 난 물건은 함부로 손대기 어려워졌다. 놀라운 기술 발전이 있었고 기계는 한층 복잡해졌다. 먹통이 된 스마트폰을 때린다고 달라질 정도로 단순한 기기가 아니다. 이름 모를 부품들이 서로 엉켜있는 모양이라 잘못 만졌다가는 순식간에 고물이 될지도 모른다. 기계 좀 만진다는 사람들도 점점 할 일은 없어졌다.

    구입한 제품 수리는 기기를 판매한 기업에서 직접 하는 추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수리비가 만만치 않은 데다 때론 고칠 돈으로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도 여러 번이다. 저렴하게 수리하고 싶어도 기업이 제시하는 수준에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렇게나 수리가 어려운 것이 옳은 일인지를. 그런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수리할 권리는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을 쉽게 수리하고 경쟁력 있는 곳에서 수리받을 선택 권한을 말한다.

    수리할 권리는 점점 대두되고 있다. 기업의 태도는 그와 정반대다. 미온적이다. 기업이 수리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역시나 돈과 관련된다. 기업은 자사 서비스센터 이용을 유도해 수익을 늘리려 한다.

    기술 보호와 소비자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도 내세운다. 소비자가 직접 수리하거나 사설 업체에서 수리를 담당하면 안전이나 성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해커에게 취약한 기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위조품이 만들어진다는 우려도 나타낸다.

    일견 맞는 말이다. 누구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해해 마음대로 활용하면 해킹에 취약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의 의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들이 포착되면서 소비자들은 의구심을 가진다. 예를 들어 불필요하게 프로세서나 메모리를 마더보드에 납땜해 고정시켜놓거나 부품을 접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표준 나사 사용, 수리 프로세스에 장애물 추가, 소프트웨어 접근 제한, 수리 설명서 접근 제한 등 고의로 수리를 어렵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발견됐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애플은 사용자가 알아서 수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2018년에는 맥 제품군을 사설 업체에서 수리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맥 제품군에 T2 칩을 탑재했다. 애플 서비스 툴킷 2(Apple Service Toolkit 2)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만 수리가 가능했는데 해당 사실은 애플의 내부 문서가 유출되면서 알려졌다. 만약 사설 수리를 받으면 T2 칩이 이를 알아차리고 오류로 인식하면서 시스템을 차단하게 된다. 애플의 이러한 조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유통한 공식 부품이 아닌 부품을 모두 저작권 위반이라며 국내 사설 수리 업체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알려졌다. 애플의 사후관리(AS) 체계가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설 업체를 상대로 한 소송은 지나치며 결국 소비자도 불편을 겪을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DMCA)이라는 이름으로 소프트웨어를 내장한 제품을 억지로 분해하거나 개조하면 불법으로 간주한다.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대부분은 이를 따르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수리하려 했거나 사설 업체에 맡긴 이력이 있으면 공식 수리도 지원하지 않는다. 물론 공식 부품을 사설 수리 업체에 제공하지도 않는다.

    애플 제품의 수리비는 비싸다고 알려졌다. 기기 수리를 맡겨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 아이폰12 수리비는 아이폰11보다 40% 넘게 인상됐다. 그렇다고 높은 수리비 때문에 사설 업체에서 수리했다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삼성의 플래그십 스마트폰도 사설 업체가 수리하기 상당히 어려운 제품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공식 서비스 센터를 찾는다. 수리할 권리도 먼 얘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요즘 수리할 권리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3월 수리할 권리 법안을 통과시켰고 2021년부터 효력이 생겼다. 사설 수리 업체에서도 공식 부품을 확보하는 길이 열린 셈이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시작된 수리할 권리 운동은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미국 20여 개 주에서는 수리할 권리 관련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호주 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생산성위원회(Productivity Commission)는 기술 제조업체가 공정하고 경쟁력 있는 수리 시장을 유지하게 하고 쉽게 수리하는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업에서도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애플은 지난해 8월부터 개별 수리 제공 프로그램(independent repair provider program)을 도입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사업자에게 수리할 권리를 제공한 것이다. 자격을 갖춘 업체는 애플 정품 부품, 도구, 수리 매뉴얼, 진단 시스템 등을 제공받게 된다. 프로그램은 최초 아이폰만을 지원했으나 맥PC로도 확대됐다.

    개별 수리 제공 프로그램은 32개국에서 신청을 받고 있으나 아직 미국 밖으로는 확장되고 있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수리할 권리는 환경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잘 고쳐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돈도 절약하고 디지털 기기 폐기물은 덜 발생한다. 비싼 수리비를 감당할 바에 새제품을 구매하자는 행렬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또다시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소비돼야 한다. EU에서 통과된 수리할 권리 법안도 유럽의 친환경 정책의 일환이었다.

    수리할 권리가 곳곳에 정착하기 전까지 공식 수리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내 돈 주고 산 기기를 내가 마음대로 못한다는 건 어쩐지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전 세계로 번져가는 수리할 권리. 수리할 권리를 통해 누구나 공식 부품을 손에 넣고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을 지키면서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로운 환경이 조성되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 Advertisement -

    Recent Articles

    Related Stories

    Enable Notifications    OK No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