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고 있는 그래픽카드의 현재 상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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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PC 시장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부품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그래픽카드’라 할 수 있다. 수량도 수량이지만, 가격 또한 기대 이상으로 높은 상황. 예로 엔비디아가 지난해 지포스 RTX 30 시리즈를 공개할 당시 RTX 3080의 미국 권장소비자가격(MSRP)을 699달러로 책정한 바 있는데, 원달러환율로 환산하면 약 82만 원 가량이다. 현재는 이 가격에 2배 이상을 줘야 구매 가능하다. 이는 다른 그래픽카드도 마찬가지다.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 가깝게 비용을 들여야 한다.

▲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서 그래픽카드를 검색한 모습.

그래픽카드 부족 현상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무엇 하나 쉽게 해결되는 분위기가 아니다. 유통 시장 구조와 부품 수급 상황 및 소비자 수요 등이 복잡하게 꼬여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곳곳에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과연 무엇들이 시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정말일까?

지금 문제는 먼저 그래픽카드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현재 지포스 RTX 30 시리즈 그래픽 프로세서는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칩을 생산하기 위해 쓰이는 웨이퍼의 가격이 올랐고,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제조사의 생산 단가가 상승하게 되면서 엔비디아 역시 각 그래픽 프로세서에 대한 공급가를 인상했다.

이는 메모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지포스 RTX 30 시리즈 중 고급 제품은 마이크론이 독자 생산한 GDDR6X 메모리를 쓴다. 지포스 RTX 3060, 3070과 같은 제품에는 GDDR6 메모리를 쓴다. 그런데 이 메모리도 결국 웨이퍼 단가 상승으로 인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칩 수요가 높아지며 상승한 가격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것이다. 다른 부품들도 수요 상승으로 인해 단가가 올랐다. 여기에서 소비자 부담이 발생한다.

▲ 그래픽카드를 제 값에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지 – 엔비디아)

자체 생산시설을 가지고 제품을 내놓는 제조사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일부 OEM(주문자 개발생산)/ODM(제조자 개발생산) 형식으로 제품을 받아 판매하는 브랜드는 가격 형성에 불리하다. 그래픽카드 생산자가 제시하는 가격에 자사 판매 마진까지 붙여 유통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생산과 출시 과정에서의 문제인데, 그래픽카드 가격에 큰 문제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바로 비정상적인 수요에 따른 시장공급 불균형에 대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에 출시된 그래픽카드는 기업이나 게이머 등 다양한 소비자에게 공급되지만, 최근 시장 불균형을 초래하는 소비자층이 하나 있다. 바로 암호화폐 채굴장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한 보상으로 알려져 있는 가상화폐는 일부 그래픽카드의 가속 능력을 활용해 획득하기도 한다. 채굴장은 이 그래픽카드를 수백에서 수천대를 설치, 동시에 가동해 이더리움 및 기타 관련 암호화폐들을 획득한다. 가뜩이나 수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이 고가에 제품을 싹쓸이하면서 물량과 공급가 모두 혼란에 빠뜨리는 상황이 되었다.

제조사는 노력 중,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제조사는 본래 시장 수요층에게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AMD는 여기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엔비디아는 다소 적극적이다. 우선 채굴 전용 장치인 CMP(Cryptocurrency Mining Processor)를 공개했다. 일반 그래픽카드에 비해 채산성이 좋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수요를 조금이나마 분산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엔비디아는 암호화폐 채굴에 특화된 CMP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반응은 그렇게 뜨겁지 않아 보인다. (이미지 – 엔비디아)

추가로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 채굴에 쓰이는 이더해시의 처리 능력을 제한해 채산성을 낮춘 LHR(Lite Hash Rate)이라는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처음 지포스 RTX 3060을 시작으로 현재는 거의 대부분 그래픽카드에 LHR 제품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 성능을 조금 더 높인 Ti 라인업도 RTX 3060 Ti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LHR 기술이 도입된 상태다. 구매 과정에서 선택 가능하며, 실제로 시장에서는 LHR이 도입된 제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유통사와 일부 판매점도 최적의 가격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처음부터 온라인 직접 판매 채널을 통해 그래픽카드를 판매한다거나 도소매 채널을 관리하기도 한다. 일부는 제한적인 오프라인 판매로 채굴장이 대량으로 제품을 싹쓸이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도소매점도 대량으로 구매하는 수요를 제한하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안정적으로 제품을 전달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채굴 수요는 지능적으로 발전하는 모양새다. 우선 LHR 기능이 무력화되는 분위기다. 과거 RTX 3060도 초기에는 이더해시 성능을 50% 제한해 기대감을 모았지만, 처음부터 무력화되었다. 현재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LHR 제품들은 초반에는 비교적 그 기능을 잘 수행했으나 최근 이를 무력화되고 있다. 그 때문에 가격 방어가 이뤄졌던 LHR 제품마저 가격이 꿈틀대는 중이다.

▲ LHR 기능을 어느 정도 무력화해 채산성을 높여주는 채굴 프로그램이 등장한 상태다.

이어 채굴 수요가 이더해시가 아닌 다른 가상화폐 채굴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부분이 이더리움 혹은 관련 암호화폐를 채굴했다면, 이번에는 레이븐이라는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이가 증가하는 추세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이더리움 계열에 대한 수요를 막았을 뿐, 다른 암호화폐를 제한하지 않은 것을 우회해 돌파하려는 움직임이다. 또한, 점차 채굴 난이도가 악화되는 이더리움을 떠나 새로운 암호화폐를 찾는 무리들이 레이븐에 고개를 돌렸다는 이야기도 힘을 얻고 있다.

일부 비양심적인 판매처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 7월, 그래픽카드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는 과정에서 일부 판매처가 보유하고 있던 그래픽카드 물량을 한 번에 내놓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높은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재고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마진을 남기기 위해 보유 재고를 모두 내놓은 것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그래픽카드 공급 상황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100% 믿기 어려운, 그야말로 시장에 대한 불신만 남긴 사건이었다.

반복된 그래픽카드 공급 불안, 다음에는 나아질까?

사실, 이번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지포스 GTX 10 시리즈와 RTX 20 시리즈가 출시된 사이에 암호화폐 열풍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 문제가 벌어진 바 있다. 불과 3~4년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에는 채산성에 대한 이유로 특정 제품으로 인기가 몰리면서 수급 불안정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물량 부족으로 인해 특정 제품 가리지 않고 전부 쓸어간 것이 과거와 다르다.

▲ 그래픽카드 수급난 해소는 언제 이뤄질까? (이미지 – 엔비디아 유튜브 캡처)

당분간은 공급 불균형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주요 제조사는 2023년 혹은 2024년까지 반도체 수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현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2022년까지는 어느 정도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이 상당하다. 시장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일반 소비자 대상의 수요는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많은 소비자는 그래픽카드 구매 시기를 현 세대가 아닌 차세대로 미루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부는 LHR이 적용된 그래픽카드로 눈을 돌리기는 했으나 특정 인기 그래픽카드는 공급이 다시 축소되면서 구매를 보류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장기적으로 판매처와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제조사와 판매자 모두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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