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최우선’은 어디에? 맹비난받는 애플의 최근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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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봐(Just Do It)’라는 슬로건은 우리가 아는 ‘그 회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공적인 마케팅이라고 봐야겠죠. 애플도 이런 부분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많은 슬로건이 스쳐지나 가지만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다르게 생각해봐(Think Different)’입니다. 애플의 성격을 제대로 드러낸 문구였습니다. 이제 더는 사용하지 않는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요즘 애플이 미는 건 따로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 iPhone이니까.(Privacy. That’s iPhone.)’

애플이 보안에 신경 쓰고 있으니 안심하고 아이폰을 사용해도 된다는 메시지가 잘 전달됩니다.

아이폰을 들고 다녀야 힙해 보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기기 그 자체로 혁신으로 불리기도 했죠. 휴대전화도 컴퓨터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상상은 현실이 됐습니다. 전화보다는 다른 일로 스마트폰을 찾는 일이 늘었습니다. 아이폰의 성공 이후 유사한 스마트폰들이 쏟아졌고 지금은 아이폰이 없어도 누구든 만족스러운 모바일 라이프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가로로 접고, 세로로 접고, 둘둘 말아 접는 미래형 폰이 하나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상 바(bar) 형태 스마트폰이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차별성을 둔 것이 바로 ‘보안’입니다. 보안에 주안점을 둔 애플의 행보를 상당한 효과를 거뒀습니다. 내 개인정보를 알고 걸려오는 대출 전화에 정보 유출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제 애플과 보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습니다.

차곡차곡 쌓아온 ‘보안의 애플’ 이미지

애플은 자사 기기 사용자들의 정보를 보호해왔습니다. 때론 과하다 싶을 정도로요.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 사건이 발생해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애플 측에 아이폰 잠금 해제 요구했는데 이를 거부했을 정도니까요. 인증 절차 없이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인 백도어(backdoor) 구축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괘씸했는지 FBI는 애플에 소송을 걸었고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소송을 취하하고 자체적으로 잠금해제 방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상황은 정리됐습니다.

2016년 2월 애플스토어 매장 앞에서 아이폰 잠금 해제 거부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한 아이폰 사용자가 휴대전화에는 ‘출입 금지(No Entry)’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다. (출처:EPA)

그밖에도 아동성범죄좌의 정보 제공 요청이나 총기난사 사건 용의자의 아이폰 잠금 해제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들어 모두 거절한 바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애플이 살인이나 마약거래, 폭력 범죄자의 아이폰 잠금해제를 거부한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범죄 수사에 도움이 되는 수사에는 협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지만 애플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호락호락하게 내주지 않는다는 이미지도 분명히 각인됐습니다.

페이스북과의 관계에 금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감하게 밀어붙인 ‘앱 추적 투명성(ATT)’ 정책도 사용자 정보를 지키려는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앱 투명성 정책은 앱을 설치할 때 사용자에게 수집 정보 내역을 알리고 원하지 않는 데이터 수집을 거부할 권리를 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애플은 앱 개발사에 앱이 수집하는 정보를 상세하게 안내하도록 했습니다. 유독 페이스북이 반발했던 것은 광고 매출에 타격을 입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은 전체 매출에서 광고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99%입니다. 페이스북 계열 앱은 다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용자 정보 추적이 막히면 타깃 광고가 제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됩니다. 앱이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 자세히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러한 결정도 긍정적으로 보여집니다.

애플의 앱 추적 투명성 정책 (출처:AP)

애플의 이러한 행보에 구글도 압박감을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미국 IT매체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에 따르면 구글은 안드로이드 이용자를 추적하는 것을 제한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용자 데이터 추적을 어렵게 하면 당장 광고 매출에 큰 타격이 올 것이라는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것으로 보입니다.

사용자의 내밀한 개인정보까지 수집되고 대규모 사생활 유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면 사람들은 불안해집니다. 편리함을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누군가 내 정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켜준다고 하면 이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요? 애플의 이러한 행동은 기업을 향한 신뢰도를 크게 높여줬습니다. 아이폰 구매 이유로 ‘더 나은 개인정보 보호’라고 답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아동 성학대 이미지 감시하겠다고 발표한 애플

그런데 최근 애플이 보여준 모습에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플이 아이폰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아동 성 착취물(CSAM)’ 이미지를 검열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영상은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외신은 가을쯤 출시될 iOS15와 아이패드OS15에서부터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고 밝혔습니다. 서비스는 전 세계로 확대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애플은 ‘뉴럴해시(neuralHash)’ 시스템을 이용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미지가 발견하고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면 비영리 민간단체인 아동실종학대방지센터(NCMEC)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자료를 공유하게 됩니다.

(출처:NYT)

애플이 CSAM 이미지를 찾기 위해 들여다보는 서비스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이클라우드(iCloud)입니다. NCMEC이 보유한 CSAM 자료에 고유한 해시값을 부여하고 아이클라우드에 올라온 사진과 대조해 해시값이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이를 의심 가는 데이터로 분류합니다. 검열에 포착된 이미지 개수가 사전 설정해둔 기준을 초과하면 그제야 애플 내 담당자가 이미지를 검토하게 됩니다. CSAM 자료가 맞다면 NCMEC로 해당 사진을 전달하고 사용자 계정은 바로 비활성화합니다.

다른 하나는 아이메시지(iMessage)입니다. 애플은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13세 미만 아동이 아이메시지를 통해 주고받는 메시지에 CSAM 관련 이미지가 있는지 찾아냅니다. 아동이 음란 이미지를 보내려 하면 부모에게 이를 알립니다. 전송을 계속 진행하면 해당 이미지를 저장해 나중에 부모가 열람할 수 있게 합니다. 이미지를 받는 경우에도 비슷한 절차를 거칩니다.

불법 이미지 근절, 좋은 일 아니야? 글쎄…

CSAM을 발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성과는 확실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애플의 새로운 정책을 반기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어찌됐건 문제가 되는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사진에 접근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요. 가까운 사람에게도 스마트폰 사진첩을 보여주는 일은 조심스러운데 아무리 신뢰하는 기업이라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겁니다.

애플은 자사의 CSAM 탐지 시스템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사용해온 시스템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보다 더 안전하다는 말로 안심시키려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보안에 신경 쓰겠다고 약속했던 애플이기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습니다.

(출처:EFF)

아동학대 음란물을 퇴치하는 일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이번 애플의 결정은 애플과 협력하는 아동실종학대방지센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 시민자유연합(ACLU)과 민주주의·기술센터(CDT) 등을 중심으로 한 세계 90여개 국가에 퍼진 정책·인권 단체에서는 애플이 CSAM을 막기 위해 아이클라우드와 아이메시지를 검열하겠다는 계획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 전자프런티어재단(EFF)도 애플이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든다며 비판했습니다. EFF는 한때 애플이 정부의 요청에도 굴하지 않고 사용자의 자기정보 통제권을 지켜낸다며 지지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EFF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백도어나 검열 없이 의사소통해야 할 권리가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애플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를 촉구했습니다.

애플도 백도어의 위험성을 모르지 않습니다. 애플의 팀쿡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백도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죠. 그는 “좋은 사람을 위한 백도어는 없다”며 공공의 안전을 챙기는 대신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이후 더한 것도 요구해올 것이기 뻔하기 때문이죠.

팀 쿡 애플 CEO (출처:HBO)

미국 정부의 도·감청 의혹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애플은 이를 통해 전 세계에 대규모 감시를 실시하고 있다”며 “실수하지 마라. 오늘 아동 음란물을 검색할 수 있다면 내일은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다”고 남겼습니다.

애플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테러리스트의 아이폰 잠금해제를 거부하고 데이터 접근 권한을 달라는 압박에도 저항했던 애플의 모습을 그리워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CSAM 검열이 도입되면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아무리 튼튼한 댐도 작은 구멍 하나가 생기면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보안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만들어 괜찮을지도 모르나 벌어진 틈은 더욱더 커져 갈 것입니다. 정부 측에서 더 강한 요구를 해올지도 모르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라는 압력이 가해질 수도 있습니다. 애플이 국가의 감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애플은 부당한 정부의 요청에 응한 적이 없다고 손사래 칩니다. 하지만 지난 5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애플이 중국 사용자의 데이터 관리 권한을 중국 당국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존 운영해오던 방식과 달리 중국 사용자 정보를 중국 정부가 소유한 기업으로 이전하는 것에도 동의했습니다.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된 고객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디지털키도 중국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행동했던 애플의 모습은 그들을 믿었던 이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CSAM 검열 시스템 도입은 애플이 각국 정부의 데이터 제공 요구를 고려해 소극적으로 타협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만약 계획을 중단한다면 비난에서 벗어날 겁니다. 보안을 강조해온 애플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지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간 지켜온 보안 정책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심각해지니 부랴부랴 내놓은 해명…”애플, 소비자는 진지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애플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간 제기된 질문들에 대해 답하는 글을 공개했습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으로 정리됩니다.

애플은 사용자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서 CSAM이 아닌 다른 데이터를 찾기 위한 용도로 변경될 것이라는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데이터 스캔 범위를 확장하는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일단 미국에서만 출시되는 기능이며 이후 다른 국가로도 확대할 때는 국가별로 법적인 부분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새로 올라온 데이터만 스캔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클라우드에 올라온 모든 데이터가 검열 대상입니다. 다만, 해시값이 일치하지 않는 항목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메시지를 통해 주고받은 내용은 절대 정부 기관과 공유하지 않습니다. 검열을 통해 CSAM 데이터가 발견된 사실은 오로지 부모에게만 알려준다고 전했습니다.

애플의 해명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EFF에서는 애플이 다음 버전의 자사 운영체제에 사용자의 사진과 메시지를 스캔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백도어를 넣는 일을 중단시키기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26일) 기준 2만 2670명이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한 유명 미식가는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없는 우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저 휴대전화 잠금만 풀어주면 더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에는 나를 특정할 수 있는 수많은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2017년 공식 홈페이지에 신설한 개인정보 보호 페이지에서 애플이 남긴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생활을 보장받는 것은 모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당신이 사용하는 애플 기기에는 수많은 개인정보가 담겼다. 오직 당신에게만 허락돼야 하는 정보다.”

애플을 사용하는 이들 중에는 보안 하나 믿고 지금까지 함께 해온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이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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