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빅테크 기업이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을 떠나려 한다는 전망이 늘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중국의 고강도 봉쇄 정책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국 내 생산 시설 가동이 어려워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요즘 더 급속히 얼어붙은 미중 관계도 탈중국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의 공급망 다각화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애플이 탈중국을 가속하고 있다는 분석은 오래전부터 나왔으나, 최근 들어 관련 소식이 증가했다. 다수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애플은 중국 외 지역에서 자사 제품을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가 중국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애플은 지난달 베트남에서 스마트워치 애플워치와 노트북 맥북, 스마트스피커 홈팟을 생산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애플워치는 현지에서 시험 생산에 돌입했다고 한다. 베트남은 무선이어폰 에어팟, 태블릿 아이패드 등 다양한 애플 주력 제품을 생산해온 지역이다. 현재 베트남에는 애플 협력업체가 투자한 공장만 30개 이상이다. 종사자 수는 16만명을 넘어섰다.
외신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에 따르면 애플은 베트남에서 보다 큰 생산 계획을 갖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팜 민 찐(P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와 팀 쿡(Tim Cook) 애플 최고경영자(CEO) 회동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베트남 총리는 애플과 포괄적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팀 쿡 CEO는 베트남에서 공급망 확장 의사를 밝히고, 베트남 정부에 정책적 혜택을 주문했다.
다음 후보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스마트폰 시장인 인도다. 인도는 애플 협력업체 폭스콘, 위스트론 등을 통해 구형 아이폰과 아이폰SE을 생산하던 지역이다. 앞으로는 최신형 아이폰도 이곳에서 만들어질 전망이다. 지난 4월 애플이 아이폰 13 시리즈 일부를 인도에서 생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달 출시한 아이폰 14 시리즈 일부도 연내 인도에서 생산한다고 한다.
애플의 공급망 다변화 의지는 팀 쿡 CEO 발언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앞서 지난 4월 “우리의 공급망은 전 세계적이기 때문에 애플 제품은 어디에서나 만들어진다”며 “(공급망) 최적화를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Bloomberg) 통신은 “애플의 중국 기반 전략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며 공급망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힘을 실었다.
하지만 중국 의존도가 큰 애플이 쉽게 탈중국할 수 없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애플 제품의 95.3%가 중국에서 생산됐다. 탈중국 대체 지역으로 꼽히는 인도는 3.1%, 동남아시아 지역은 1.1%에 불과하다. 올해 두 지역 생산 비중은 각각 7%, 1.8%로 늘어날 전망이나 중국 생산량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외신 CNN은 팀 쿡이 CEO로 재임하는 기간 중국과 애플 관계가 상당히 깊어졌고, 과도한 중국 의존도가 애플의 탈중국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Canalys) 분석가 앰버 리우(Amber Liu)에 의하면 애플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애플의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같은 이유로 애플이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탈중국 행보를 무작정 추진하긴 어렵다는 것.
실제 애플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상당히 신경 쓰는 듯하다. 지난 7월 애플은 중국에서만 아이폰 13 시리즈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애플이 이런 혜택을 제공하는 건 드문 일이다. 최근 발표한 아이폰 14 시리즈 가격도 그렇다. 미국 외 지역에선 환율을 이유로 출고가를 인상했으나, 중국은 이와 관계없이 동결했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아이폰 14 가격은 약 15% 정도 높아졌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당초 중국은 아이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에 의하면 10년 전만 해도 중국은 미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 제조한 부품을 저렴한 인건비로 조립하는 공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는 단순 조립 공간을 넘어 아이폰 생산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 경제학 교수 위칭 싱(Yuqing Xing) 연구를 보면 초창기 중국이 아이폰 생산에 이바지하는 비중은 3.6%에 불과했다. 상황은 점차 변했다. 중국 업체들이 직접 스피커, 배터리, 카메라 모듈 등 아이폰 부품을 제작하면서 기존 공급업체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 현재 중국의 아이폰 생산 기여도는 25%를 넘어섰다는 설명이다. 이에 NYT는 애플이 다른 지역에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중국 업체 부품을 조달받아 조립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현지 중국인 핵심 인력이 증가하면서, 애플 제품 생산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고 알려졌다. 이 기간 애플은 본사 직원들에게 격리 기간(2주)과 4주 근무 조건으로 일급 1000달러(138만원)을 제안하며 중국 출장을 권했다. 그러나 많은 직원들이 코로나19 불확실성을 우려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격리 기간이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애플은 중국 현지 인력 채용을 늘리고 이들의 권한을 확대했다. 예컨대 애플은 원래 본사 직원들이 진행하던 회의를 중국 직원들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중국인 직원들이 아시아 지역 부품 협력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애플은 현지 직원 수를 얼마나 늘렸을까.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에 따르면 올해 애플의 중국 내 일자리 수는 지난 2020년 대비 50% 증가했다.
결국 애플이 탈중국을 선택하더라도 쉽게 하루아침에 중국을 벗어나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공급망 분석 기업 LMA 컨설팅 그룹(LMA Consulting Group) CEO 리사 앤더슨(Lisa Anderson)은 “애플이 중국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그렇지만 중국을 대체하기란 쉽지 않기에 더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년 전 애플의 대표 협력업체인 폭스콘의 CEO 류양웨이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그는 “폭스콘이 중국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짓는 데 30년 걸렸다”며 “다른 지역이 순식간에 이를 따라잡을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애플이 공급망 다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윤정환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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