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이트댄스(Bytedance)는 숏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입지를 굳힌 틱톡의 모회사다. 틱톡의 성공으로 덩치를 키운 바이트댄스가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을 모색하는 듯하다. 지난해 가상현실(VR) 하드웨어 분야 진출을 위해 제조사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엔 독자 설계한 칩 개발에 도전한다는 소식이다.
18일(현지시간) 외신 CNBC는 바이트댄스가 다른 중국 업체들처럼 자체 칩 개발에 나설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바이트댄스는 이 같은 배경에 대해 “요구사항을 충족할 공급업체를 찾기 어려웠다”며 “전문 분야에서 사용 가능한 전용 칩 설계 방안을 모색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개발 하려는 칩이 자사 사업에 최적화된 맞춤형 제품이라고 부연했다.
바이트댄스에 따르면 독자 칩은 판매용이 아닌, 자사에서 사용할 전용 칩이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판매용 반도체 개발엔 관심 없다는 입장이다. 또 바이트댄스는 인텔 x86 칩을 조달받되, 공급업체와 협력해 클라우드용 RISC 칩을 커스터마이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바이트댄스는 오래전부터 맞춤형 칩 개발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지 매체 판데일리(Pandaily)는 바이트댄스가 1년 전부터 독자 칩 연구·개발(R&D) 팀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현재 이 팀은 서버 칩, 인공지능(AI) 칩, 비디오클라우드 칩 등 세 개 파트로 나뉜다는 설명이다. 특히 서버 칩 개발 파트장은 전 퀄컴 출신이라고 한다.
독자 칩 개발을 위한 바이트댄스의 인재 영입은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현재 바이트댄스는 시스템온칩(SoC) 설계부터 성능 분석, 검증, 저전력 설계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탐내고 있다. 판데일리는 “바이트댄스가 전문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할 계획”이라며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과 Arm 소속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고 했다.
바이트댄스 자체 칩 개발은 여타 중국 테크 기업들의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해 한때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화웨이가 몰락한 이후,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모두 바이두, 알리바바를 비롯한 거대 중국 기업들이다.
이들은 미국 제재의 결말과, 시장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깨달은 듯하다. 독자 칩 개발이다. 미국 IT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Accenture)는 “경쟁사와 동일한 칩을 사용하기보다 맞춤형 칩을 원하기 때문”이라며 “자체 칩을 쓰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통합을 이룰 수 있고 제품 차별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말 자사 클라우드 사업 강화를 목적으로 전용 서버 칩인 이티안 710(Yitian)과 서버 판주(Panjiu)를 공개했다.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이티안 710은 5나노미터(nm) 공정으로 만들어진 알리바바 독자 설계 칩이다. 알리바바가 그 전부터 자체 칩을 설계해 왔다. 지난 2019년 알리바바는 AI 칩 한광 800(Hanguang 800)을 공개한 바 있다.
바이두도 반도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바이두는 지난 2018년 독자 설계한 쿤룬(Kunlun) 1세대를 선보인 바 있다. 지난해 말부턴 연산 능력을 3배 강화한 2세대 쿤룬 칩을 공개하기도 했다. 바이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같은 해 산하 반도체 사업부를 떼어낸 뒤, 쿤룬신커지(Kunlun Chip Technology)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반도체 독자 개발에 눈길을 돌린지 오래다. 오포는 마리실리콘X(MarisiliconX)라는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한 이력이 있다. 지난 4월에는 2023년 출시를 목표로 독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개발은 직접회로(IC) 자회사인 상하이 제쿠(Shanghai Zheku)와 함께 진행 중이다.
이외 비보는 올해 4월 이미지처리장치(ISP) 칩인 V1을 개선한 V1 플러스를 공개했다. 샤오미는 지난 2017년 자체 개발 AP 서지(Surge) S1을 개발한 이래, 다양한 전용 칩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이달 발표한 샤오미 12 울트라엔 자체 ISP 칩인 서지 C2가, 지난해 출시한 샤오미 12 시리즈엔 배터리용 칩 서지 P1이 각각 탑재됐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영어판인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는 이 같은 중국 기업들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체는 현지 업계 전문가 인터뷰를 인용하며 “자체 칩을 개발하는 것은 (중국) 기술 회사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는 가운데 반도체 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자체 칩 설계에 매달리는 중국 기업들을 우려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많은 중국 기업이 반도체를 독자 설계하고 있으나, 외국의 기술 없인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CNBC는 “중국 업체들이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선 여전히 외국의 도구에 의존할 수 있다”며 “중국 대기업은 여전히 외국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예컨대 알리바바가 개발한 이티안 710은 영국 반도체 기업 Arm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바이두 쿤룬 2세대 칩은 7나노 공정, 오포는 3나노 공정 기반 칩을 개발 중인데 중국엔 이를 생산할 만한 업체가 없다. 대만 TSMC나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 생산을 위탁해줄 업체가 없으면, 제품 양산이 어렵다는 말이다. 반도체 생산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업체 ASML이 없다면 생산 설비를 마련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
내로라하는 반도체 생산업체에 비해 뒤떨어진 기술력도 문제다. 캐나다 반도체 전문 외신 테크 인사이츠(Tech Insights)는 얼마전 중국 반도체 기업 SMIC가 7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SMIC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를 차지하는 중국 기업이다. 7나노 공정은 2020년 상용화된 기술이다. 며칠 전 삼성전자가 세계 첫 3나노 공정을 도입한 것을 보면 SMIC의 기술력은 상당히 뒤떨어진 수준이다.
세계 정세 흐름도 중국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중국은 오는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굴기를 추진 중인데, 미국 주도로 이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칩4 동맹(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으로 불리는 연합이다. 칩4 동맹엔 미국, 일본, 대만이 들어가며 한국도 참여를 권유받고 있다. 빅4 동맹이 결성되면 중국 입장에선 난처할 수밖에 없다. 올해 1분기 기준 대만의 TSMC(53.6%), 한국의 삼성전자(16.3%)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70% 점유하고 있어서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와 미중 패권 전쟁으로 독자 칩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포착되고 있다. 과연 중국 업체들은 외국 기업의 도움 없이 맞춤형 칩 개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들이 제2의 화웨이가 될지, 아니면 자체 칩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윤정환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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