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공개도 안 했는데…알려는 자 vs 숨기려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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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보기술(IT) 기기의 출시가 가까워져 올수록 소비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이런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제품과 관련된 루머가 하나둘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지금 사용 중인 기기가 오래됐거나 원하는 기능을 탑재한 제품이 나오면 하나 장만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루머에 솔깃하게 된다. 공개 날짜가 다가오면 루머의 강도는 더 세진다.

루머는 소비자의 관심을 그대로 반영한다. 관심 없는 기업의 평범한 신제품은 애초에 다양한 루머가 생산되지 못하며 나오더라도 확산되는 힘이 약하다. 우리가 삼성이나 애플 제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루머들이 쏟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공식 발표가 아니라면 의심이 들기 마련이다. 루머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잘못된 정보였는지 아니면 루머가 알려지고 나서 애플 내부 계획이 변경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소비자에게 있어 루머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정보다. 정보가 맞고 틀리고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듯 어느새 대상이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운 좋게 알아버린 것 같은 짜릿함도 선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치 영화 예고편처럼 소비자에게 기대감을 불러오는 효과를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예고편은 좋아도 스포일러까지 알려지는 상황은 문제가 있다. 제품에 대한 지나친 정보 유출은 모든 관심이 집중돼야 할 신제품 공개 이벤트의 영향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소비자가 깜짝 놀라기를 바라지 이미 아는 내용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는 일은 원치 않을 것이다.

애플 정보유출자에도 급이 있다

애플 제품은 출시 전부터 관련 정보 유출이 가장 활발하다. 애플의 루머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도 있다. 애플 제품 출시 관련 정보를 흘리는 이들도 많다. 흔히 이들을 팁스터(Tipster)라고 부른다. 정보유출자라는 뜻이다. 실제 제품이 공개되고 나서 확인해보면 이들의 예측이 적중했던 경우가 상당히 많다. 미디어도 소비자도 이들의 말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애플 정보 유출자 중에서도 적중률을 따져 순위까지 매기고 있다. 애플트랙 웹사이트(AppleTrack.com)에 접속하면 잘 정리돼있다. 순위에 오른 몇몇을 살펴보자.

적중도가 가장 높은 팁스터는 ‘강(Kang)’이다. 예측했던 것 중 97.1%가 적중하면서 1위에 올랐다. 아이폰12 라인업과 홈팟 미니는 공개 전 이미 기기 스펙을 상세하게 공개했고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강은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으나 상당히 정확한 소식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2위는 트위터리안 코인엑스(CoinX)다. 단 한 번 예측에 실패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적중률을 보여줬지만 활동이 뜸하며 그마저도 지난해 3월 이후로 트윗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3위는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이다. 디인포메이션은 팁스터가 아니다. 미국 온라인 IT 전문매체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 IT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린 제시카 레신(Jessica Lessin)이 나와 설립한 매체로 연 399달러라는 높은 구독료에도 자신들의 강점인 심층 보도를 무기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애플 제품 관련 예측 적중률은 90%다. 지금은 확인이 어렵지만 곧 알게 될 장기적인 예측도 많이 내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 통신 기자 마크 거먼(Mark Gurman), 중국발 IT 소식통 러브투드림(L0VETODREAM), 애플 전문 매체 나인투파이브맥(9TO5MAC), IT팁스터 온리크스(OnLeaks), 애플 전문 매체 맥루머스(MacRumors), 월스트리트저널(WSJ),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 밍치 궈(Ming-Chi Kuo), IT팁스터 존 프로서(Jon Prosser) 순으로 뒤를 이었다.

(출처:gsmarena)

정보 유출에 민감한 애플

애플은 정보 유출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갖지는 않은 듯하다. 앞서 높은 애플 제품 예측 정확도 1위 자랑했던 강에게 지난달 애플 측 변호사가 경고 서한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 발표도 하지 않은 애플 제품 정보를 계속 유출한다면 법적 조치를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경고 서한을 자세히 보면 애플의 생각이 잘 담겨있다. 서한에서는 정보유출자들에게 애플이 직접 공개하지도 않은 애플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애플 경쟁업체에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강은 “나는 미공개 제품 사진을 공개하거나 정보를 판매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는 다른 팁스터와는 달리 미공개된 제품 사진을 유출한 적은 없다. 강은 애플이 자신의 웨이보 활동에 간섭해서는 안 되며 감정을 알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애플의 스마트폰을 사용한 자신의 경험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애플이 공개하지 않은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마음껏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서 애플이 로펌에 자신 말고도 여러 IT팁스터를 상대로 경고장을 전달하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을 제외하고 다른 IT팁스터가 경고 서한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IT팁스터들이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신중한 태도로 정보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플은 정보 유출을 막으려 내부 개발 프로세스도 변경했다.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 개발 시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특정 기능에만 접근하도록 해 변경 사항에 대한 세부 정보에 노출되는 직원의 범위를 줄였다.

애플이 자사 제품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루머가 마구 돌아다니는 것을 차단하려는 애플의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애플 신제품 정보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으로 이름을 날렸던 IT매체 씽크시크릿(Think Secret)은 애플의 압력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애플은 씽크시크릿이 내부 소식통을 활용해 애플 제품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고소했다. 결국 매체 운영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진다.

(출처:whatcounts/flickr)

애플이 ‘비공개’ 지켜온 이유

애플의 ‘비공개’ 전략을 충실히 구사하고 있다. 과거로 거슬러가면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의 팔로알토연구소(Palo Alto Research Center, PARC)에 방문해 처음으로 마우스를 활용한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GUI)를 접하게 됐다. 잡스는 곧바로 컴퓨터 개발에 착수한다.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새로운 방식의 운영체제를 보여주기도 했다.

1983년 애플은 마우스와 GUI를 적용한 컴퓨터 리사(Lisa)를 출시했다. 리사는 마우스를 사용한 편리한 조작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비싼 가격으로 대중화는 실패했다. 같은 해 빌 게이츠는 애플의 아이디어를 모방한 윈도우 1.0을 내놓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래픽 방식 운영체제 탄생은 애플 컴퓨터가 한동안 경쟁에서 뒤로 밀려나는 계기가 됐다.

대부분 이때부터 자사 정보를 함부로 유출하거나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른 기업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

최근 삼성전자도 공개될 신제품 관련 정보가 유출되면서 난처해하는 모양새다. 삼성은 8월 11일에 언팩 행사를 열고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등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팁스터를 중심으로 신제품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출되고 있다. IT팁스터 에반 블래스(Evan Blass)는 각종 삼성 제품의 렌더링 이미지를 공유했는데 360도 회전 사진을 유출하면서 제품 구석구석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삼성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진이나 영상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중앙일보는 에반 블래스를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했다. 한국 매체로는 처음이다. 출시 전 제품 정보를 유출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미지나 정보를 찾는 사람이 많다”라며 재미있으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유출하는 것도 팔로워를 즐겁게 해주는 취미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루머가 양산되는 것이 애플에 늘 독이 되는 건 아니다. 때론 공생하기도 한다. 애플 전문 매체인 맥루머스나 애플인사이더 등이 전달하는 루머는 애플 제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회사의 인지도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디까지나 과한 것과 과하지 않은 것의 기준을 잘 세워두는 것이 중요하다. 루머와 정보 유출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제품 공개 전에 모든 걸 알아버려서 공개 이벤트에서는 허탈함만 느껴서는 곤란하다. 루머는 소비자가 기대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보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정작 제품이 출시됐을 때 기업 제품에 신선한 감정이 느껴져야 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나유권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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