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39)더러운 물에 던져도 ‘삼투압’으로 정수 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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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서부 지역은 홍수가 잦다. 은조이아강에서 범람한 물로 온 마을이 황폐화되기 일쑤다. 물은 화장실과 축사 등을 침수시킨다. 대변 등 각종 오염물질이 물에 섞이면서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홍수처럼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물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이 지역 주민은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2011년 이 지역에서 HTI(Hydration Technology Innovation)라는 정삼투압 전문 기술기업과 소재기업 이스트만 케미컬이 공동으로 자금을 지원해 시범 사업을 추진한 게 있다. 바로 ‘하이드로 팩’의 파일럿 프로젝트다. 홍수가 잦은 지역인만큼 양사는 하이드로 팩을 테스트하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HTI와 이스트만 케미컬 직원이 모금을 통해 하이드로 팩을 케냐 서부 홍수 피해 지역에 공급했고, 이를 통해 하이드로 팩의 유용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하이드로 팩은 HTI가 개발한 정삼투압 방식 휴대용 정수 장치다. 비닐 팩처럼 생긴 이 장치는 오염된 물을 정수해서 마실 수 있는 음료로 바꿔준다. 일반적으로 정수 장치라고 하면 ‘필터’를 떠올리기 쉽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정수기는 세디멘트, 활성 카본, RO 멤브레인 필터 등을 사용해 물을 깨끗하게 한다. 각각 미세한 오염 물질을 포집하거나 걸러주어 사람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물로 정수한다.

하이드로 팩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물을 정수한다. 하이드로 팩의 정수 방식은 정삼투압(FO)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역삼투압(RO) 방식과 대비된다. 역삼투압은 물속 불순물 농도가 높은 쪽에서 불순물 농도가 낮은 쪽으로 이동시켜 정수하는 방법이다. 보통 삼투압은 불순물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이동해 균형을 맞추는데, 역삼투압은 그 반대다. 이 때문에 강한 압력이 필요하다.

하이드로 팩의 정삼투압 방식은 삼투압 원리를 그대로 사용했다. 하이드로 팩 안에 고농도의 유도 물질을 넣어두고 특수 비닐로 감쌌다. 하이드로 팩 자체가 특수 비닐로 반투막 역할을 한다. 외부의 오염된 물은 하이드로 팩의 유도 물질 농도보다 낮다. 여기서 수분이 하이드로 팩 안으로 삼투압 현상으로 이동하게 되고, 하이드로 팩 안에 물이 모이는 원리다. 각종 오염 물질은 삼투압 과정에서 걸러진다.

하이드로 팩이 다른 정수기와 다른 것은 순수한 ‘마실 물’만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부의 유도 물질 때문에 독특한 맛을 내는데, HTI는 각종 과일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실제 하이드로 팩을 통해 수분을 섭취한 사람들은 ‘스포츠음료’와 비슷한 맛이라고 평가했다. 순수한 물은 아니지만 스포츠음료처럼 수분을 섭취하는 데는 충분하다. 하이드로 팩의 음료수는 열량도 있는데 약 120칼로리다.

삼투압 방식으로 물을 정수하기 때문에 시간은 좀 걸린다. 하이드로 팩을 가득 채우면 200ml가 넘는데, 이 정도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오염된 물에 10시간 정도는 둬야 한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특별한 추가 조치 없이 흙탕물이나 구정물 같은 오염된 물에 빈 하이드로 팩을 던져 놓기만 하면 된다.

하이드로 팩은 상시적인 정수 장치는 아니다. 홍수와 같은 재난·재해 지역에서 긴급하게 사용하는 용도다. 일종의 긴급 구호물자와 같다. 케냐에서 시범 테스트를 거친 하이드로 팩은 성능을 인정받아 아프리카 전역에 공급되기도 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쓸모로 적정 기술의 한 사례로 남았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하이드로 팩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제조사인 HTI가 사업을 접었기 때문이다. 하이드로 팩 사업만 접은 것이 아니라 HTI 회사가 자취를 감췄다. 업계에서는 많은 부채로 인해 회사가 도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일부 재고로 추정되는 하이드로 팩을 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볼 수 있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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