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집중 타격, 얻는 것과 잃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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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길다.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보 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 행정 명령에 사인을 하는 순간 개전이 선포됐다. 미국 공공 시장뿐만 아니라 민간에도 보안 우려가 있는 중국 통신 장비를 배제하는 것이 골자다. 올해 5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행정 명령을 연장하면서 장기전을 예고했다. 2012년 중국의 대표 정보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에 대한 보안 우려가 의회에서 처음 제기된 후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다.

2020년 상반기 마지막 날. 미국이 또다시 화웨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미국의 정보통신 분야 규제와 감독을 담당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중국 화웨이와 ZTE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은 연방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화웨이와 ZTE 장비를 구매할 수 없게 됐다.

세계 각국에 손길을 뻗고 있는 화웨이가 미국 시장에서만큼은 재미를 못 보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만큼 지역 통신사업이나 소규모 기업에서는 화웨이 장비를 쓰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FCC의 조치에 따라 이 또한 길이 막혔다. 미국 중소 통신 업체는 인구가 적은 지역을 대상으로 통신 서비스할 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 규모가 83억달러 수준이다. 이제는 보조금 대상 장비에서 화웨이와 ZTE는 배제된다.

‘화웨이 제재’ 카드…미·중 무역 분쟁 승기 잡기 위한 포석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화웨이 장비에 백도어가 존재해 언제든지 주요 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자유 무역의 선봉장이었던 미국이 외국의 특정 기업을 ‘핀셋’으로 콕 집어 제재하려면 국가 안보 정도의 명분이 필요하다.

화웨이 창립자가 중국 군인 출신이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화웨이와 중국 정부 혹은 중국군과의 끈끈한 연결 고리는 업계를 떠나 세계적으로 의혹과 의심을 사고 있다. 로이터는 미 국방부가 작성한 문건을 단독 보도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와 영상 보안업체 하이크비전 등을 중국 인민해방군이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기업으로 지정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국방부의 지정으로 향후 미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해당 기업을 처벌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분석했다. 화웨이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미국 정부의 프레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가 안보 문제만을 배경으로 하진 않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좀 더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화웨이 전(戰)에 임하고 있다. 첫째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다. 세계 최대 최강의 국가라고 자부하고 있는 미국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급상승하면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전(錢)해전술’ 앞에 많은 경쟁 국가가 휘청거리고 있다. 막강한 인력 인프라를 활용해 ‘세계의 공장’으로 거듭난 중국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기업들이 중국에 터를 닦았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게 직간접적으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산 제품을 소비하지만 미국산 제품은 제대로 팔지 못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다. 미국에는 생산 공장도 중국 보다 많지 않고 인건비가 비싸 최종적으로 가격 경쟁에서 우위에 서지 못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국을 포함해 해외 기업에 엄포를 놓아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산 능력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미국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로 국민의 호응을 얻고 이를 통해 재선에 성공하려는 게 트럼프 미 대통령의 단기 전략이다.

글로벌 공급망 안에 있는 ‘화웨이’…미국 반도체 기업도 단기 피해 예상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을 제재하고 미국 기업을 보호하는 전략으로 승기를 되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통은 피할 수 없었다. 자유 무역 시스템에서 시장 경제를 특정 국가가, 그리고 정부가 누르려 하니 부작용이 발생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는데, 그중 미국 기업도 존재한다.

최근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스틱스(SA)가 발간한 ‘화웨이 제재 : 통신, 글로벌 반도체 및 미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 보고서를 보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화웨이 제재로 인해 약 70억달러(8조40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 매출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8.7%다. 화웨이가 브로드컴 반도체를 매년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치 사들인다는 의미다. 인텔 경우 화웨이에 판매하는 데이터센터 칩이 연간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제재로 단기적으로 이들 기업의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보스턴컨설팅 그룹은 최근 미중 무역 분쟁으로 세계 반도체 수요가 약 40%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웨이의 미국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동맹국을 통해 화웨이 장비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압박한다면 화웨이를 무너트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중국 기업 하나 망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만천하에 알리면서 미중 무역 분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내다봤을 것이다. 하지만 화웨이가 글로벌 공급망 안에 들어온 하나의 주체였고, 그로 인해 정보기술(IT) 관련 생태계가 흔들린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혹은 이를 예상했더라도 얻을 것이 더 많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는 큰 관심이 없을, 다른 국가의 기업들도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5월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특정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직접 사용한 특정 반도체 제품을 화웨이가 입수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겨냥하기 수출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기업도 미국 기술을 이용해 화웨이에 반도체 등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받을 공산이 커졌다. 대만의 반도체 업체 TSMC를 겨냥한 것이라고들 하지만,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화웨이는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를 비롯해 연간 12조원 규모의 제품을 사들인다. 일부 통신사에서 화웨이 통신장비를 구매하고 있지만, 화웨이 또한 우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제법 큰 고객이다. SK하이닉스가 대 화웨이 매출이 큰 편이다. SK하이닉스 매출 중 화웨이는 약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이보다는 적어 연간 화웨이 매출 비중이 6~7% 수준이다.

반도체 외에도 화웨이를 고객으로 삼는 기업이 꽤 있다. ‘윈도’ 운용체계를 화웨이 노트북에 공급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표적이다. MS는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제재를 자유 무역 주의에 반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도 있다. 록히드마틴, 아마존, 애플, 3M, 포드 등 미국 기업이 미국 정부의 광범위한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반도체 주요 고객은 잃지만, 스마트폰·통신장비 경쟁 우위 차지한 기회

실이 있으면 득도 있다. 우선 화웨이의 제품 라인과 경쟁 관계가 있는 기업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화웨이가 고객이기도 하지만 경쟁자이기도 하다. 화웨이가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 동맹국에서 맥을 추리지 못하면 그 빈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생긴다. 스마트폰이 시장 대표적이고 통신장비 시장도 마찬가지다.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주요 제품과 기술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신제품 출시 지연, 납품 연기 등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 시기를 잘 포착해 정보통신 시장에서 공세를 펼친다면 그만큼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화웨이가 복수의 부품 거래 업체에 당초보다 10~20% 줄인 주문 계획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제재로 인해 화웨이가 어쩔 수 없이 감산 조치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5월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피처폰 전체 시장에서 1위를 탈환했다. 화웨이는 0.1%의 근소한 차이로 2위로 밀려났다. 다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0.1% 차이로 삼성전자를 앞지르고 아직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웨이를 포함한 통신장비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기회는 더 매력적이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2025년 미국의 5G 이동통신 가입률을 50%라고 전망했다. 59%인 우리나라 다음으로 높다. 일본(49%), 유럽연합(34%) 등을 앞지를 것으로 관측된다. 그만큼 미국 5G 시장이 크게 확장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미국이 7월 민간 광대역 무선 서비스(CBRS) 주파수 경매를 앞두고 있다. 본격적인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고 5G 통신장비 구축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웨이 장비의 미국 시장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하면, 노키아와 에릭슨 등 통신장비 강자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도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5G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줄다리기해야 할 처지…세계 시장 축소만은 피해야

결국 화웨이 제재는 미중 무역 전쟁 가운데 하나의 전투다.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 와중 우리는 우리만의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가령 매출의 15%를 화웨이에 의존한다는 TSMC가 화웨이와 거래 차질이 발생할 경우 삼성전자 등 국내 파운드리 업체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하지만 TSMC의 화웨이 분이 삼성전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이 TSMC를 발목 잡는다면 그 제재가 우리 기업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우리나라와 일본, 독일 등 동맹국에게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고객을 잃어 매출 측면에서 막대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지루한 줄다리기를 해야 할 처지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실이 커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회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눈치 싸움이다.

단기적 ‘실’은 수치로 뚜렷이 나오지만, 장기적 ‘기회’는 수량화하기 힘들다. 확신하기도 힘들다. 앞으로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기업의 어려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불확실성 속에서, 다만 세계 시장 자체가 쪼그라드는 일이 없길 기대할 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도 강력한데, 미·중 사이에 낀 처지도 안타깝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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