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29)이제 낫으로 아이의 탯줄을 자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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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탯줄을 자를 때 사용하는 거예요”

조산사가 꺼내든 건 농기구인 ‘낫’이었다.

낫을 받아든 그는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

멍하니 그 농기구를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산모가 출산 중에 사망하는 대표적인 유형이 3가지가 있다. 첫째 심한 합병증이다. 두 번째는 산모가 너무 어린 경우다. 10대에 아이를 낳다가 몸이 감당하지 못해 산모가 죽는다. 마지막으로 산모의 출산 당시 위생적인 출산 도구가 부재할 경우다. 청결하지 못한 출산 환경에서 산모는 쉽게 감염된다. 이는 곧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안전한 것도 아니다. 출산 때 위생과 청결이 중요한 이유다.

의료 전문가인 인도의 주바이다 바이는 출산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그도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를 낳을 때 감염증으로 1년 넘게 고생을 했다. 그가 아이를 낳은 곳이 인도에서는 나름 의료 시설을 잘 갖춘 곳이었는데도 세균 감염을 피할 수 없었다. 출산 환경을 개선하는 건 어쩌면 그에겐 지상 과제와 같았다.

여성을 위한, 산모를 위한 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08년이다. 그는 인도의 한 농촌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조산사를 만났다. 조산사는 막사와 같은 집에서 아이를 받았다. 조산사와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주바이다 바이는 헤어지기 전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런데 출산 도구는 어떤 걸 쓰세요”

조산사가 아무렇지 않게 꺼내든 것이 바로 낫이었다. 조산사는 탯줄을 자를 때 사용하는 기구라고 했다. 농기구로 아이의 탯줄을 자르다니. 잘린 탯줄을 통해 산모와 아이가 모두 세균 감염을 일으킬 수 있었다. 주바이다 바이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곳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임신이나 출산과 관련한 질병으로 여성이 사망하는 것을 모성 사망이라고 한다. 조금 오래된 통계지만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세계 산모 가운데 세균 감염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29만명이었다. 최근 모성 사망률이 비약적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격차가 너무나도 크다. 여전히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여성이 출산 중 죽는다. 10만 명당 수백 명의 모성 사망이 발생하기도 한다.

주바이다 바이는 ‘탯줄을 자르는 낫’ 사진을 찍어 돌아왔다. 위생적인 출산 도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위생 출산 키트(Clean Birth Kit)’라는 제품이 있다는 걸 알았다. 비영리단체에서 기금을 조성해 생산하는 제품이었다. 그는 기뻤다. 그래서 키트를 주문해봤다. 도착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기금이 모이지 않으면 키트를 생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위생 출산 키트를 받은 주바이다 바이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닐 시트와 실, 면도칼 등이 있었다. 몇몇 도구는 포장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염의 원인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 출산 키트를 들고 몇몇 엄마들을 찾아갔다. 출산 경험이 있는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이걸로 아이를 낳을 바에 바닥에서 출산하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수년간 이 출산 키트는 개선되지 못했다. 자선 사업의 한계였다.

2010년 그는 결심했다. 직접 출산 도구를 만들어보겠다고. 소셜 벤처이자 사회적 기업인 Ayzh를 설립해 그동안 연구해온 출산 도구를 생산키로 했다. 이름은 ‘잰마 키트(Janma Kit)’다.

잰마키트는 WHO가 지정한 출산 가이드라인에 따라 위생과 청결 유지에 집중했다. 가이드라인은 아이를 받는 조산사가 손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것. 칼, 면봉, 코드 타이, 수건 등 출산에 필요한 도구의 청결성을 강조하고 있다.

잰마키트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출산 키트를 구성했다. 구성품은 산모용 출혈 흡수 시트, 수술용 메스, 탯줄 집게, 비누, 장갑 한 쌍, 아이를 닦을 천 등이 있다. 위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 개별 포장해 출산 도구를 통한 세균 감염을 막았다. 이 출산 키트를 분홍색의 작은 가방에 담았다.

잰마키트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저렴해야 한다. 비위생적 출산 환경에 놓인 여성 대부분은 가난하다. 조산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선진국과 같은 의료 시설에서 아이를 낳기 힘들다. 누구나 쉽게 잰마키트를 구매할 수 있도록 가격은 3달러 수준으로 책정했다. 우리 돈으로 3000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구입한 잰마키트 하나가 출산하는 어머니와 아이를 살릴 수 있다.

잰마키트는 지속 가능해야 한다. 주바이다 바이가 처음 위생 출산 키트를 보고 배운 것이다. 자선이나 기부 방식으로 잰마키트를 공급하면 성공할 수 없다.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고 끊임없이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급과 수요에 걸맞은 시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3달러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최소한의 마진으로 원활한 잰마 키트 공급망을 조성하기 위한 비용이다.

잰마 키트는 철저하게 ‘여성’에 초점을 맞췄다. 잰마 키트를 생산 유통하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다. 이 일자리를 여성으로 채웠다. 산모와 신생아의 생명을 살리는 동시에, 여성에게 ‘경제 활동’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주바이다 바이는 잰마 키트를 만들 때 엄마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했다. 수요자에게 필요한 출산 도구를 만들려는 취지다. 많은 부분을 제품 개발에 반영했지만, 그가 더 놀란 것이 있었다. 바로 엄마들의 열정이었다. 주바이다 바이는 “이 여성들도 비록 극심한 가난으로 힘들어하지만, 건강과 복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몸은 가난해도 마음까지 가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엄마들과 의료 보건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해 탄생한 잰마키트는 2016년까지 지나 60만명의 산모와 태아를 도왔다. Ayzh는 키트 구성을 풍성하게 해 필요에 따라 신생아용 모자, 엄마를 위한 식별표, 아이를 위한 식별표, 추가 장갑 등으로 더한 키트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필수 신생아 키트, 엄마를 위한 산후조리 키트, 위생 생리용품, 의료진을 위한 간편 키트 등 그 품목을 늘려가고 있다. 모두 출산과 관련해 엄마와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도구들이다. 잰마키트를 비롯, Ayzh 출산 도구를 받아든 산모와 조산사는 더 이상 낫으로 탯줄을 자를 일이 없다.

주바이다 바이는 TED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청중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여성 건강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단순하지만 존엄성을 가지고 여성의 건강 문제에 접근해야 하죠.

예를 들면, 산모 사망률 줄이기, 여성을 억압하는 금기 깨기, 여성에게 자주적인 권리를 주는 것까지요.

이게 저의 꿈이에요.

하지만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참여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그래요 여러분 모두 말이에요.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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