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28)물을 모으는 탑 ‘와카 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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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 나무라는 게 있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에 자생하는 무화과 속 나무다. 큰 나무의 키는 20~25m에 달한다. 과실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유용하다. 잎이 많고 넓은 편이라 나무 아래는 그늘이 잘 생긴다. 태양을 피하고 싶은 주민들에게 적당하다. 사람들은 와카 나무 아래서 쉬기도 하며 마을 공동체의 소통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때때로 작물이 잘 자라기를 혹은 비가 오도록 기도하는 장소로 활용한다.

이 와카 나무의 이름을 빌려온 적정 기술이 바로 와카 워터다. 명칭에서 읽을 수 있듯 물과 관련됐다. 에티오피아를 포함, 많은 아프리카 국가는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때로는 여성이나 아이들이 수~수십 km를 걸어 물을 길어온다. 무거운 물통을 들고 한참을 걸어야 하는 건 이곳 주민들에게 고통을 배가시킨다.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르투르 비토리가 2012년 에티오피아 북동부 마을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장면도 꼭 이런 것이었다. 여성과 아이들은 물을 얻기 위해 먼 길을 나서야 했다. 그나마 저수지에서 얻은 물도 오염된 것이 많았다. 세균이나 기생충이 있는 물을 마시면 각종 질병을 야기한다.

아르투르 비토리와 그의 팀 ‘아키텍처앤비전’은 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싶었다. 보통 땅을 파 지하수를 얻는 방법을 선택했겠지만, 이곳에는 알맞지 않았다. 사람도 부족하고 땅을 파기 위한 장비를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 고산지대다 보니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상당히 깊이 파야 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키텍처앤비전 팀은 스테노카라를 떠올렸다. 스테노카라는 딱정벌레의 한 종류로 아프리카 서남부의 나미브 사막에 주로 서식한다. 1년 중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사는 스테노카라는 아침에 안개가 끼면 물구나무 서기를 한다. 스테노카라 등에는 오돌토돌한 돌기가 있다. 밤부터 새벽까지 기온이 내려가면 공기 중 수분이 돌기에 붙어 물방울(이슬)이 맺힌다. 이슬이 충분히 모이면 겉 날개를 펼치는데 돌기 사이로 물방울이 흘러 딱정벌레가 마실 수 있다.

핵심은 이슬과 돌기였다. 밤 사이 추워져 이슬점 밑으로 내려가면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응결해 물방울이 된다. 한두 방울의 물은 큰 효용이 없지만, 이를 대량으로 모으면 사람이 마실 식수로 활용할 수 있다. 팀은 스테노카라의 돌기 역할을 할 구조물을 고안했다. 나일론을 촘촘히 엮어 조밀한 그물을 만들었다. 주변 공기 중의 온도보다 그물 소재 온도가 더 떨어지면 물방울이 그물에 맺히는 방식이다.

대나무 등 식물 줄기를 엮어 큰 틀을 만들었다. 탑 모양이다. 이 탑 모양 구조물이 앞서 언급한 그물을 둘러싼다. 아래는 물을 받을 수 있는 큰 대야를 놓아둔다. 아주 이른 새벽 그물에 물방울이 맺히면 그 무게로 아래로 내려간다. 물방울이 떨어지면 대야에 받아 식수나 농업용수로 활용하자는 게 와카 워터의 아이디어다. 와카 워터는 비영리단체 형태로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와카 워터 구조물을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주변 재료를 이용하면 8명이 한 팀을 이뤄 4주 안에 와카 워터를 만들 수 있다. 현지 공장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는 키트 방식으로 공급한다면 4명이서 하루 만에 조립할 수 있다. 와카 워터 하나를 세우려면 최소 100평방미터(약 30평)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와카 워터 구조물이 세워지면 주변에 캐노피를 두른다. 캐노피는 낮에는 내려서 사람들이 모여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와카 나무와 같은 지역 공동체의 소통의 장 같은 역할이다. 또한 물이 쉽게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햇볕을 막아 온도를 낮추는 일도 한다.

유지 보수도 편하다. 적정 기술은 일단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와카 워터 팀은 에티오피아에 설치한 와카 워터는 6~10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일론 섬유나 대나무 등 천연 소재를 활용하는 만큼 고장 나거나 깨질 염려도 없다. 대나무 소재가 부서지거나 균열이 있을 경우 이를 교체하는 작업 정도가 필요하다. 태풍이 왔을 때는 구조물을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급할 경우 4명이서 30분 안에 해체가 가능하다.

단순한 원리와 간단한 구조물이라 설치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전문 지식이 없는 현지인도 조금만 배우면 스스로 와카 워터를 설치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와카 워터를 통해 대량의 물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와카 워터 팀이 와카 워터를 만들 때 목표 획득 수량은 하루에 50~100리터였다. 프로젝트 팀은 만족할 만한 수량을 얻었다고 하지만 환경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제한적일 수 있다. 다만 에티오피아와 같이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는 와카 워터를 통해 물을 확보하는 게 보다 용이하다. 일교차로 인해 이슬이 더 쉽게 맺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보통 10도 이상 일교차가 발생하며 일교차가 심할 경우는 20도에 육박할 정도의 일교차를 보이기도 한다.

물을 최대한 많이 얻기 위해 몇 가지 요구되는 조건도 있다. 낮 동안 바람의 유입을 최소화해 모아둔 물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모인 물은 온도가 높아져 증발하기 전 회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물을 얻는 시간은 해가 뜨기 전 아침 일찍이 적당하다.

공기 중의 물을 응결시켜 활용하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무방하다. 와카 워터 팀은 비나 이슬, 안개를 통해 얻은 물이 오염되지 않았을 경우 식수로 활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와카 워터에 미세 여과나 항균 필터 같은 기술을 내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와카 워터는 아직 완전한 형태의 적정 기술은 아니다. 프로토타입으로 계속 연구 개발을 진행하며 물을 얻을 수 있는 환경과 조건, 구조에 따른 효율 등을 지속 개선하고 있다. 2012년 버전(V) 0.1에서 시작한 와카 워터는 그 크기와 구조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2017년 기준 V 3.7까지 왔다. 십수 개의 와카 워터를 아프리카에 설치하고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얻는 물의 양에 대비해 얼마나 비용을 쏟느냐는 것이다.

현지 환경에 최적화한 단순한 기술, 현지 소재를 활용해 지속 가능하고 유지 보수도 편리한 기술이 적정 기술의 기본 요건이다. 와카 워터는 이러한 적정 기술 요건을 최대한 충족하며 식수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한편, 와카 워터와 유사한 방식으로 물을 확보하는 또 다른 적정 기술이 있다. 캐나다 비영리단체 ‘포그 퀘스트’의 아이디어다. 원리는 스테노카라 딱정벌레가 물을 얻는 방식과 똑같다. 즉 와카 워터와 원리상으로는 거의 동일하다는 의미다. 모양이 조금 다른데, 포그퀘스트는 폴리프로필렌 소재 망사를 가림막처럼 세운다. 안개가 많은 지역이 적당한데, 칠레와 에콰도르 등 지역이 적당하다고 한다. 망사 아랫부분에 물을 모을 수 있는 수관이 존재한다. 와카 워터와 비교해 살펴보면 흥미롭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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