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27)행복한 대야, ‘관심→아이디어→적정기술’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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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기술도 기술인지라 초기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아이디어가 적정 기술로 바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사업화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는 적정 기술의 활발한 탄생의 토양이 되고, 이는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게 해준다.

번개를 맞은 듯 아이디어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니다. 우선 대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것도 애정 어린 관심이어야 아이디어로 성장하고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상의 많은 이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 적정 기술을 탄생시킬 아이디어를 만든다.

여기 깨끗한 식수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 있다. 우리나라의 디자인 회사 ‘온유’의 김우식·최덕수 디자이너가 고안해냈다. 이름은 ‘행복한 대야(Happy Basin)’이다.

2009년 서울 디자인 올림픽에 참가, 철해치상과 시민특별상을 수상한 행복한 대야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중 ‘물 얻기(Collectiing Water)’에 집중한 디자인이다.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오염된 물을 마셔 질병에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깨끗한 식수를 찾기 위해서 수십 km를 걸어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행복한 대야는 깨끗한 물을 마시기 힘든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태어났다. 이름 그대로 대야 모양이다. 행복한 대야를 오염된 물 위에 두면 부력으로 물이 떠오른다. 대야 가장자리와 수면 사이에 공기층이 생겨 물에 뜨는 것이다.

행복한 대야 하단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을 통해 물이 들어오는데, 그냥 들어오지 않는다. 구멍에 자리한 나노 필터를 통과해야 한다. 나노 필터를 통과한 물은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다. 즉 오염된 물의 이물질과 세균 등이 나노 필터에서 걸러지는 휴대용 정수기 같은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단순해 보인다. 이 행복한 대야가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행복한 대야 디자인은 물에 뜨고, 오염수를 걸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야를 뒤집어서 머리에 쓰면 모자로 활용할 수 있다. 가벼운 소재로 만드는 것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하다.

왜 대야를 모자로 사용해야 할까. 마치 전쟁 중 철모를 냄비로 사용했던 옛날 사례가 떠오른다. 행복한 대야의 모자 기능은 ‘물 얻기’라는 행위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깨끗한 식수를 얻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햇빛을 가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행복한 대야의 디자인은 하나도 허투루 고안된 것이 아니다. 나노 필터가 위치한 구멍도 뜻이 있다. 이 구멍의 디자인 패턴은 지구 대륙을 형상화했다. 온유 측은 “제3세계 국가 구성원들이게 그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는 키워드”라고 강조했다. 작은 디자인 하나로 지구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키자는 의도가 내포됐다.

행복한 대야는 상용화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완성된 건 디자인이다. 이를 제품화하려면 어떤 소재로 어떻게 행복한 대야를 생산할지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적정 기술로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비정부기구(NGO) 등 또 다른 적정기술의 주체가 가세해야 한다.

미완성의 아이디어, 단순한 디자인 때문에 누군가는 행복한 대야를 평가 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으로 시작한 이 디자인 아이디어도 적정 기술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싹을 틔우는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적정 기술은 화려하지 않다. 적정 기술을 탄생시키는 아이디어도 항상 완성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따스한 관심에서 시작된 이 과정 없이는 적정 기술도 없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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