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24)한 아이에게 한대의 노트북, 그리고 시선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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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매사추세츠 공대(MIT)였다. MIT 미디어랩 창립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2005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그 자리에서 ‘100달러짜리 노트북’을 외쳤다. 저가 교육용 노트북을 만들어 저개발국가 어린이에게 보급하자고 제안했다.

저개발국가, 개발도상국에서는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지 못하다. 가지지 못한 이들은 교육의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한다. 교육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야 할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빈곤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100달러 노트북은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노트북 가격을 최대한 낮춰 기부 방식이든, 국가에서 보급하든 아이들에게 교육 수단을 ‘공급’한다. 배움의 길을 열어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자는 목표다. 우선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MIT 미디어랩 교수진은 100달러 노트북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비영리 단체 ‘OLPC’다. ‘아이에게 한대의 노트북(The One Laptop per Child)’라는 뜻이다.

프로젝트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 목적의 실현 방법은 활동의 원칙을 통해 구체화한다. OLPC의 5대 원칙도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한대의 노트북을 주기 위한 사업의 기본 정신을 명시했다. 첫째 노트북의 소유는 어린이어야 한다. 둘째 어린이가 쓰기 쉬워야 한다. 셋째 충분히 보급돼야 한다. 넷째 서로 연결돼야 한다. 다섯째 자유롭고 공개된 소스(오픈소스) 여야 한다.

이 같은 요건을 갖춰 탄생한 것이 XO 노트북이다. 초기 모델은 AMD 중앙처리장치(CPU)를 채택, 366Mhz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계획했다. 메모리는 128MB다. 1Gb 수준의 낸드 플래시를 저장 장치로 활용한다. 무선 네트워크를 지원하는데 CPU 전원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패킷을 자동 전달할 수 있다. 직류 입력과 충전지 팩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매우 저사양 노트북이지만 XO-1 모델을 기획할 당시가 2006년인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가격도 100달러로 맞추기 위해서는 ‘교육’이라는 목적에 최적화한 사양이어야 한다.

XO 노트북의 수요층도 제품 개발에 반영해야 했다. 저개발국가의 어린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을 때도 활용할 수 있도록 휴대성을 높였다. 디자인은 조금 투박하더라도 튼튼한 게 우선이다. XO 노트북의 유지 보수 비용이 많이 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설계도 최대한 단순화해 고장 확률을 줄였다. 운용체계(OS)는 리눅스를 채택했다.

OLPC의 프로젝트가 구체화하자 많은 국가와 기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교육 기회의 평등이라는 목표에 공감하며 저마다 지원 방법을 찾았다. AMD, 브라이트스타, 이베이, 구글, 마벨, 노텔, 콴타, 레드햇, 아스트라 등 정보기술 기업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XO 노트북이 공급된 건 2007년부터다. 우루과이, 미국 버밍햄, 멕시코, 페루 등에 약 60만대 XO 노트북을 공급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유엔개발계획(UNDP)도 지원에 뛰어들었다. 비영리단체와 민간 기업, 공공 부문까지 협력해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OLPC는 기세를 몰아 2008년까지 1억500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결과는 용두사미였다. 뜻은 창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급량부터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2009년까지 수십만 대를 공급했고 2012년까지 200만대 이상 공급했지만 목표였던 1억5000만대에는 크게 못 미쳤다. 공급한 XO 노트북이 잘 활용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첫해 보급 지역이었던 미국 버밍햄에서는 공급한 XO 노트북 10대 중 8대는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분야의 적정기술로도 조명을 받았던 XO 노트북이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가격이다. 처음에는 100달러가 목포였지만, 190달러에서 더 이상 낮추기 힘들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저개발국가들은 OLPC 프로젝트 동참을 망설였다. 투자 수익 대비 성과가 불분명한 사업에 쉽사리 발을 담그기 어려웠던 것이다.

교육 시스템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도 OLPC 프로젝트 확산의 발목을 잡았다. 교육 시스템이란 사회, 문화, 정치, 경제와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와 같다. 현지의 여러 상황을 다방면으로 고려해 XO 노트북을 공급했지만 놓친 것이 많았다.

우선 XO 노트북 활용을 교육하거나 기술을 지원할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 현지의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조차 조성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OLPC 프로젝트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과 전력이라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기(XO 노트북)만 손에 든다고 교육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왜 XO 노트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도 부족했다. 프로젝트 확산 동력이 미비했던 것이다.

이러한 XO 노트북의 흥행 실패는 시선 방향을 곱씹게 만든다. 시선의 방향이 어디에서 어디를 향하는지가 적정기술의 성패를 좌우한다. OLPC 경우 ‘공급’의 시선이 프로젝트의 중심이 된 사례다. 수요보다는 수혜 측면을 염두에 둔 것으로, 적정 기술이 피해야 할 위험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트북이라는 IT 기기가 여타 단순한 적정기술보다 복잡성이 높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보통의 적정 기술과 달리, 노트북은 기술 공급자가 제한적이다. 현지 생산과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부’ 형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MIT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OLPC는 MIT가 펴내는 과학기술 전문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2019년)’에서 21세기 들어 실패한 ‘나쁜 기술 10가지’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OLPC의 창대한 시작도 MIT가, 부족한 성과의 평가도 MIT가 했다.

하지만, OLPC가 완전히 종료하거나 회생 불가에 빠진 건 아니다. 예전만큼 인기는 얻지 못하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보다 개선할 점을 찾으며 보완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XO 노트북에 사용하는 독자 그래픽 환경 ‘수거(Sugar)’를 라즈베리 파이에 적용하는 방안도 고안했다. 라즈베리 파이는 컴퓨터 과학 교육을 위한 싱글 보드 컴퓨터다. XO 노트북도 성능 향상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최신 모델인 XO-4 경우, XO-1 대비 4배 빠른 속도를 자랑하고 전력 소비도 크게 줄였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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