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18)미생물과 모래의 콜라보, 깨끗한 식수를 위한 ‘바이오 샌드 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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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물의 중요성은 수없이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나라 경우 손쉽게 깨끗한 식수를 구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는 그러하지 못한 곳이 많다. 아직까지도 10억명 가까운 사람들이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각종 독성 물질이나 병원균에 오염된 물을 마시는 사람도 많다. 오염된 식수를 마시면 설사병과 같은 수인성 질병에 걸리기 쉽다.

어린아이들에게 특히 위험하다. 유니세프 등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오염된 물과 비위생 환경으로 설사병에 걸려 사망한 5세 미만 어린이 수는 한해 약 36만명이다. 하루에 설사병 때문에 죽는 5세 미만 아이가 1000명에 달한다는 의미다.

(사진=유니세프)

오염된 물에서 사는 기생충에 의해 감염되는 주혈흡충병 환자는 전 세계 2억650만명(2016년 기준)이라고 한다. 주혈흡충병은 영양실조를 야기하거나 어린아이 지능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빈혈이 발생하기도 하고, 성장·교육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염된 식수의 위험성 때문에 수많은 국가에서 식수 정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정화 시설 확보에 적극 투자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빈부격차가 뚜렷하다. 개발도상국 상당수는 적절한 식수 정화 시설을 갖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가난한 국민들이 독자적으로 소규모 정화 시설을 갖추거나, 생수를 구입해 마시기도 어렵다.

데이비드 맨즈 박스

적정 기술의 주요 과제이자 목적 중 ‘깨끗한 식수 확보’가 빠지지 않는 배경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물을 정화해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기술은 언제나 시급하게 필요하다. 지속 가능하며 쉽게 접근 가능한 식수 정화 기술. 캐나다 캘거리 대학의 데이비드 맨즈 박사도 이러한 적정 기술을 고민했다.

데이비드 맨즈 박사는 ‘완속 여과’ 기술에서 해답을 찾았다. 완속 여과 기술은 1820년대 영국 런던 첼시 정수장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래 층 위에 있는 물 표면에 호기성 미생물 여과막을 생성, 정수하는 방식이다. 여과 속도는 느리지만 유지 관리가 쉽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적정 기술로는 제격이다.

완속 여과 기술에서 찾은 적정 기술 ‘바이오 샌드 필터’, 어떻게 생겼나

1980년대 말 가정용 바이오 스탠드 필터를 제안한 데이비드 맨즈 박사는 1991년 현장 실험을 진행했다. 바이오 샌드 필터 시스템을 구체화해 1993년 특허를 획득했다. 데이비드 맨즈 박사는 캐나다 인도주의 엔지니어인 카밀 다우 베이커와 함께 비영리단체 ‘CAWST’를 설립했다. CAWST를 통해 오염된 식수를 정화하는 ‘바이오 샌드 필터’ 기술을 교육하고 배포하고 있다.

바이오 샌드 필터의 구조와 원리는 단순하다. 우선 구조를 살펴보자. 바이오 샌드 필터를 적용하려면 가로X세로 30cm, 높이 1미터 정도의 통이 필요하다. 통은 필터 컨테이너라고 부른다. 즉 바이오 샌드 필터를 담는 정수기 같은 것이다.

바이오 샌드 필터 구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각 구조를 보기로 한다. 가장 하단에는 굵은 자갈을 깔아둔다. 굵은 자갈층이 높을 필요는 없다. 최종적으로 걸러진 물에 모래가 섞이지 않기 위함이다. 가장 밑부분에서 깨끗한 물을 내보내기 때문에 배수 자갈이라고도 한다.

그 위에는 좀 더 작은 자갈을 쌓아놓는다. 이 또한 두꺼울 필요는 없다. 주 역할은 그 위에 쏟아부을 모래가 배수 자갈 쪽으로 흘러 내려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이다. 그래서 분리 자갈이라고 한다. 모래보다는 살짝 크고 배수 자갈보다는 작은 자갈이 적당하다.

그 위에는 고운 모래가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이 필터 역할을 수행한다. 전체 필터 컨테이너(정화통)의 60~70% 정도를 채우면 된다.

하이라이트는 이 고운 모래 위에 있는 미생물막이다. 이 필터가 ‘바이오’ 샌드 필터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기도 하다. 모래 위 1~2cm 정도인데, 사전에 물을 넣으면 물속에 있는 미생물이 얇은 막을 형성한다. 제작자가 미생물 막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한다. 미생물막이 형성되는 데는 1~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모래 위에 미생물 막이 형성된다

처음 바이오 샌드 필터 정수 장치를 만들었을 때, 이 미생물막이 형성되지 않아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라 조금 기다려야 한다. 이 미생물 막이 오염수를 정화하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하니, 반드시 필요하다.

미생물 막 위로는 물 분산 판이 있다. 디퓨저라고 한다. 플라스틱 판이나 철판 등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서 설치한다. 물을 골고루 뿌려주기 위함인데, 그 효력은 후설 키로 한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덮어준다. 물이 추가적으로 오염되거나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해충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다.

미생물 막과 모래층이 정수의 핵심 ‘바이오’와 ‘샌드’의 콜라보

바이오 샌드 필터의 오염수 정화 원리는 물을 붓는 순간부터, 위에서 아래로 보도록 하자. 정화 통에 뚜껑을 열고 오염된 물을 부으면 가장 처음 만나는 게 물 분산 판(디퓨저)이다. 그냥 물을 공급하면 통 안에 특정 부분으로만 물이 집중된다. 이렇게 되면 얇고 부드러운 미생물 막을 손상시킬 수 있다. 미생물 막이 손상되면 정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물을 분산 공급할 필요가 있다. 즉 물 분산 판에 구멍을 많이 뚫은 이유는 여러 곳에서 균일하게, 그리고 조금씩 물을 공급해 미생물 막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병원균을 제거하는 원리

물 분산 판을 거쳐 방울방울 떨어진 오염수는 미생물 막과 만난다. 여기서 첫 번째 정수 효과를 볼 수 있다. 오염수에는 이물질로 인해 탁도가 높고 병원균이 살고 있다. 오염수 속 이물질과 병원균 상당수가 미생물 막을 통과할 때 걸러진다. 물이 통과할 수 있는 정수 필름 같은 역할이다.

미생물 막 속 미생물이 병원균을 잡아먹기도 한다. 오염수 내 병원균 수를 절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오염수의 탁도 또한 감소시킨다. 탁도는 물속에 있는 흙, 먼지 등 이물질 때문인데, 미생물 막을 통과하지 못한다. 또 미생물 막은 일부 중금속이나 독성 물질을 정화하는데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생물 막에서 1차적으로 걸러진 물은 두꺼운 모래층을 만난다. 이 모래 층에서도 상당한 정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매우 작은 틈에 일부 병원균이 포집된다. 즉 모래 틈에 끼여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래층에는 충분한 산소와 병원균이 먹을만한 물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굶어죽기도 한다. 자연 소멸이다.

모래층을 통과한 물은 분리 자갈과 배수 자갈을 지나 정화 통 가장 아래에 모인다. 아랫부분에 설치한 호스를 통해 바이오 샌드 필터 컨테이너 밖으로 배출된다. 물은 중력으로 아래로 내려가고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따로 동력이 필요 없다. 바이오 샌드 필터를 이용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을 시간당 12~18리터 정도 얻을 수 있다.

박테리아 98.5%, 바이러스 70~99% 제거율 보여

바이오 샌드 필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 CAWST에 따르면, 장내 기생충(연충류)과 원충(원생동물)은 거의 100% 제거된다고 한다. 박테리아 경우 98.5% 이상 사라지며, 바이러스 제거율은 70~99%에 달한다.

도미니카 공화국 보아오 지역의 55가구를 대상으로 바이오 샌드 필터를 실험한 결과, 대장균 경우 평균 감소 비율이 93% 수준이었다. 2008년 진행한 한 연구에서는 바이러스 제거율이 85~95%(45일 후 기준) 정도다. 일반적으로 대장균 등 박테리아보다 바이러스 제거율이 낮다. 이는 바이러스의 크기가 박테리아보다 작기 때문이다.

사진=CAWST

탁도 또한 상당히 개선된다. CAWST 발표에는 약 95% 수준의 탁도가 개선된다. 물 맛과 생활용수로 쓸 경우의 색 변화 등을 야기하는 철은 95% 정도 제거된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철을 64% 정도 제거했는데, 중금속 제거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바이오 샌드 필터로 거른 물을 마신 후 건강이 개선됐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과 네바다 대학이 도미니카 공화국과 캄보디아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바이오 샌드 필터 사용 후 모든 연령층에서 설사병을 47% 줄였다고 한다. CAWST가 아이티에서 설문조사 한 결과, 187가구 중 95%가 바이오 샌드 필터로 수질이 개선됐다고 인식했다. 또 10명 중 8명은 바이오 샌드 필터 사용 후 가족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고 응답했다.

후 처리로 보다 깨끗한 식수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바이오 샌드 필터가 100% 완벽한 식수를 제공하진 않는다. 일부 바이러스 등은 필터 정화 이후에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CAWST는 추가적인 조치로 식수 안전성을 더하라고 권고한다. 저렴한 추가 정화·소독 방법으로는 염소 처리를 하거나, 물을 끓이거나, SODIS 법 등이 있다.

SODIS는 앞서 [적정 기술로 함께 살자] 코너에서 소개한 바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권동준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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