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소련 우주 전쟁 1 : 자존심에 상처 입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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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탐사, 어쩌다 하게 된 걸까?



(출처:Pixabay)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선 러시아가 소련으로 불리던 195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국제 정세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대립하는 냉전시대였다. 미국과 소련은 군비부터 외교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려는 첩보활동이 난무하다 보니 ‘스파이 전쟁’이라고 불리는 시기이기도 했다.

우주 연구도 마찬가지였는데, 인공위성 기술 개발의 시작이 이때다. 정찰기를 날리지 않고도 타국의 정보를 염탐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과학적 연구가 아닌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된 셈이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출처:NASA)

우주 경쟁의 시초는 1957년 발사된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다. 소련은 10월 4일 스푸트니크 1호를 실은 R-7 로켓을 쏘아 올렸고, 지구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한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국으로 소련이 등극하게 된 것이다.

소련에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은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이 나올 만큼 미국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항공은 물론 로켓, 탄도 미사일 개발에서 자기네보다 훨씬 뒤떨어져있다고 여겼던 미국은 한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군사위성은 아니었지만 스푸트니크는 당시 하루에 15번씩 미국 하늘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 미국 또한 인공위성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련은 한 달 뒤엔 스푸트니크 2호 발사에도 성공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12월 6일 인공위성 발사를 감행한다. 당시 상황을 전 세계로 생중계하기도 했는데, 뱅가드TV3호로 명명된 미국의 인공위성 발사는 처참하게 실패한다. 제대로 비행하지도 못 하고 폭발해 버린 것.

그 다음 해인 1958년 1월 30일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는 성공하지만, 소련은 4일 뒤인 2월 3일 과학탐사 위성인 스푸트니크 3호를 발사하며 ‘우주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경쟁심에서 시작된 달 탐사

소련의 계속된 인공위성 발사 성공에 미국은 여러 개로 나눠져있던 우주 개발 기관을 합친다. 1958년 7월 29일, 우주 개발 기술 발전을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인 NASA를 정식 발족한 것이다. NASA 설립 이후 미국은 우주 강대국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예산을 쏟아붓는 등 총력을 다한다.

우주 경쟁은 양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점점 번졌다. 두 나라의 다음 목표는 더 이상 인공위성 발사가 아니었다. 다음 목적지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위성인 달에 가는 것. 먼저 해야 할 일은 탐사선을 보내 달 주변을 살펴봐야 한다. 사람을 달로 보내기 위해선 안전한 착륙지 확보가 중요하니까.



(출처:NASA)

미국은 파이어니어 계획 실행에 돌입한다. 탐사선을 발사해 달 궤도를 도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 또한 실패하고 만다. 8월부터 1~2달간 4개의 탐사선을 발사했지만 발사 직후 폭발, 발사 자체 실패, 비행 중 교신 끊김 등으로 모두 성공하지 못한다.



루나 1호의 궤적 (출처:NASA)

소련도 무인 달 탐사에 도전하는데 1959년 1월 2일 루나 1호를 발사해 달 근접 비행에 성공한다. 2호는 최초로 달에 충돌해 사진을 전송했고, 66년에 루나 9호가 달에 처음으로 착륙하게 된다. 2달 후엔 달 주위를 도는데 성공하며, 매 발사마다 ‘최초’의 타이틀을 소련이 거머쥔다. 소련 탓에 미국은 만년 2위 신세였다.

이 때문에 NASA의 압박감은 상당했다. 달 탐사로 경쟁하던 1965년 NASA의 예산은 미국 연방 예산의 4%에 달했다. 거금을 지원받고는 있지만 매번 소련에 밀리는 꼴이 되자 부담감이 심했을 거다.

미국의 반격?



머큐리 계획 당시 선정된 우주인들 (출처:NASA)

소련이 계속해서 ‘최초’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을 때, 미국이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은 NASA를 설립한 이후 유인 우주계획에 힘쓰고 있었다. ‘머큐리 계획’이라 불렸는데, 소련보다 먼저 인간을 우주에 보내는 것이 목표였다.

7명의 우주 비행사를 선발해 인간이 우주공간에서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뿐만 아니라 우주선의 자세 제어부터 탈출 장치 성능 시험까지. 약 3년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출처:NASA)

목표는 1961년 5월. 그런데 소련이 또다시 선수를 친다. 한 달이나 앞선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해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소련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은 약 108분간 우주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한다.

이에 미국은 머큐리 계획을 대폭 수정해 비행사 1명만 우주로 보낸다. NASA 소속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트가 프리덤 7호를 타고 15분간 비행을 한다. 소련은 지구 궤도까지 올라가 선회 비행을 하고 돌아왔는데, 미국은 고작 탄도 비행을 하고 온 것이다.



(출처:NASA)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유인 달 착륙은 미국이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쥔다. 아폴로 11호는 달 착륙에 성공, 귀환했다. 매년 2위였던 미국이 대내외적인 부담감을 딛고 어떻게 달에 착륙할 수 있었을까? 이에 관한 이야기는 차후에 다뤄보겠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전다운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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