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유럽연합(EU)이 전자기기 충전 단자를 USB-C로 통일하는 디지털 시장법(DMA)을 제정했다. 적용 대상은 스마트폰, 태블릿, e북 리더, 디지털카메라, 게임기, 헤드폰, 이어폰, 휴대용 스피커, 무선 마우스와 키보드 등 휴대가 가능한 전자기기 전반이다.
EU는 제조사가 곧바로 USB-C 충전 단자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전환 기간을 2년 두기로 결정했다. 전환 기간은 2024년 12월 24일까지며, 이후 USB-C 충전이 불가능한 전자기기는 유럽에서 판매할 수 없다. 이에 많은 제조사가 전자기기에 USB-C 충전 단자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 애플도 아이폰 15 시리즈에 그동안 사용하던 라이트닝 8핀 대신 USB-C 단자를 채택했다.
카메라 관련 소식을 전하는 해외 매체 페타픽셀(PetaPixel)은 EU 규제가 DSLR 카메라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10월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요 카메라 제조사가 DSLR보다 미러리스 카메라를 개발·출시하는 데 주력하는 지금, EU 규제로 인해 DSLR 판매에 차질이 생기면 제조사가 DSLR을 단종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USB-C 탑재한 DSLR 거의 없어…2025년부터 유럽서 판매 불가
최근 출시된 미러리스 카메라는 대부분 USB-C 단자를 탑재하고 PD(Power Delivery) 충전을 지원한다. 하지만 오래전에 출시한 DSLR에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달리 카메라 본체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직접 충전하는 사용자는 많지 않다. 단자 내구성이 비교적 약해 파손되기 쉽고, 충전 중 메인보드가 고장 난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전자기기에 USB-C 단자 규격과 PD 충전 기술이 널리 보급된 이후에도 DSLR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았다.
USB-C 충전이 가능한 니콘 DSLR ‘D780’ (출처 : Amateur Photographer)
현재 주요 카메라 제조사가 판매 중인 DSLR 모델은 캐논이 9종류, 니콘이 4종류다. 이중 EU 규제 전환 기간이 끝난 뒤 유럽에서 계속 판매할 수 있는 건 니콘 D780 단 1종류다. 캐논 DSLR 중에는 USB-C로 본체를 직접 충전할 수 있는 제품이 없고, 니콘 제품 중 USB-C를 탑재한 제품은 대부분 외부 디스플레이 출력 전용 단자로 사용해 충전 기능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효일 이전에 출시된 제품에는 해당 규제가 소급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돈 적도 있었다. 하지만 EU가 고지한 지침에 따르면 전환 기간에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제품도 계속 판매할 수 있지만 전환 기간이 종료된 뒤에는 규정에 따라 USB-C 충전을 지원하는 기기만 판매할 수 있다.
카메라 제조사, EU 규제에 어떻게 대응할까
니콘 Z 50은 USB-C 충전을 지원하지 않아 EU 규제 대상에 속한다 (출처 : Nikon)
다수의 외신 보도에 따르면 유럽 디지털카메라 출하량은 전 세계의 20~25% 정도를 차지한다. 유럽 시장에서 DSLR 판매가 불가능해지면 카메라 제조사 매출에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DSLR 외에도 USB-C 충전 기능이 없는 일부 보급형 카메라도 판매가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판매 중인 제품 중에서는 캐논 M 시리즈 미러리스 카메라, 니콘 Z 50, 소니 RX100 VI/VII, 올림푸스 E-P7과 OM시스템 OM-5가 USB-C 충전을 지원하지 않는다.
1년 뒤 전환 기간이 만료되면 카메라 제조사는 어떻게 대처할까. 예상되는 방법은 3가지다.
첫 번째는 EU 규제 대상 제품을 단종시키는 것이다. 페타픽셀을 비롯해 소식을 전한 외신들은 카메라 제조사가 EU 규제를 명분 삼아 DSLR 생산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유럽 시장에서 팔던 재고품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 다른 지역에서 판매한 다음 해당 제품을 추가로 생산하거나 단종시킬 수 있다.
세 번째는 배터리가 USB-C 충전이 가능하게끔 리뉴얼하는 것이다. 배터리에 USB-C 단자를 탑재해 직접 충전을 지원하면 EU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종의 편법인 셈이다.
USB-C 케이블로 직접 충전할 수 있는 카메라 배터리 (출처 : SmallRig)
실제로 스몰리그(SmallRig)나 프롭티(Probty)를 비롯한 카메라 액세서리 제조사는 디지털카메라 호환 배터리에 USB-C 단자를 탑재해 직접 충전이 가능한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단,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핵심 제품군이 DSLR에서 미러리스로 바뀐 만큼 제조사가 DSLR 배터리를 리뉴얼할 가능성은 낮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이병찬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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