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미지를 만들거나 수정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AI가 정교하게 만든 이미지는 실제 사진과 구별하기도 어렵다. 올해 4월에는 국제 사진 대회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SWPA)’에서 상을 탄 작품이 AI가 만든 이미지였다는 게 알려지면서 전 세계 사진 매니아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카메라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도 AI를 활용하면 원하는 사진이나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사진작가에게 이런 행위는 반갑지 않다. 잘 찍은 사진을 전시해도 “혹시 AI가 그린 게 아니냐”라며 의심부터 하는 사람이 차차 늘게 뻔하기 때문이다.
CC 기록 기능이 탑재된 라이카 M11-P (출처 : Leica)
의심받지 않으려면 직접 찍고 조작하지 않은 사진이라는 걸 먼저 증명할 수밖에 없다. 독일 카메라 제조사 라이카(Leica)가 이 점에 주목해 독특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10월 26일(현지시간) 라이카는 세계 최초로 콘텐츠 자격 증명(CC) 기록 기능을 탑재한 상용 카메라 ‘M11-P’를 발표했다. 이는 2022년 1월 출시한 ‘M11’에 CC 기록 칩셋을 탑재한 제품이다.
CC는 그래픽 소프트웨어 개발사 어도비(Adobe)가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한 변조 방지 메타데이터(Metadata)다. 메타데이터는 파일 속성을 나타내는 내부 기록을 말하는데, CC에는 콘텐츠를 제작한 사람의 정보가 포함돼 다른 사람이 도용하거나 위·변조하는 것을 방지한다.
어도비 포토샵으로 CC 정보를 확인하는 모습 (출처 : Adobe)
파일을 수정하거나 편집해도 CC는 지워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AI가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를 수정하거나 도용하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이런 피해를 당했다면 CC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다.
M11-P로 찍은 사진, 원본 증명·저작권 보호에 주력
디지털카메라에는 기본적으로 메타데이터 기록 기능이 탑재돼 있다.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 제조사와 모델명, 사용한 렌즈, 초점거리와 조리개를 비롯한 각종 촬영 설정값이 이미지 파일 속 메타데이터에 기록된다.
M11-P는 한발 더 나아가 메타데이터에 촬영자 정보와 연락처, 저작권 관련 고지 사항, 소유권 같은 추가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 게다가 제조사와 모델명, 일부 이미지 속성을 고쳐 쓸 수 없게 제한했다. 또한 사진 파일마다 전자 서명을 제공해 라이카 포토스(FOTOS) 앱을 통해 사진이 변조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보정한 내역까지 CC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Adobe)
CC에는 사진 수정·보정 내역도 기록된다. 따라서 사진을 어도비 포토샵 같은 그래픽 편집 소프트웨어로 보정했다면 메타데이터에 작업 내역이 그대로 드러나 원본 데이터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
조작 안 한 사진으로 ‘저널리즘’ 신뢰 향상시킬 수 있어
사진을 찍다 보면 보정할 일도 있고, 크기를 조절하느라 그래픽 툴로 편집할 때도 있다. 그런데 굳이 원본 사진을 유지하면서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상황이 있을까. 일반 소비자에게는 사진을 보정하지 않았다는 정보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라이카 M11-P (출처 : Leica)
반면 포토저널리즘 같은 분야에서는 사진이 원본이라는 걸 증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포토저널리즘은 언론사가 사진이나 그림을 매개로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기사의 핵심 내용을 사진으로 보충하거나 기사 전체를 사진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기사에 사용한 사진이 그래픽 소프트웨어로 수정한 이미지라는 게 드러나면 믿을만한 기사가 아니라고 지적받을 여지가 있다. 반면 원본 사진으로 작성한 기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증명한다면 독자의 신뢰를 끌어낼 수도 있다.
라이카는 수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사진 파일에 포함함으로써 신뢰도를 향상시키고, 나아가 라이카 카메라가 세계적인 사건·사고를 촬영하는 데 활용할 만한 권위 있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양은 M11과 동급…내부 저장소와 CC 칩셋 추가돼
라이카 M11-P (출처 : Leica)
라이카 M11-P 사양은 기반 모델 M11과 거의 같다. 6천만 화소 풀프레임 이미지 센서와 마에스트로 III 이미지 프로세서를 탑재해 고해상도 이미지를 빠르게 촬영·저장한다. 기본 메모리 슬롯이 UHS-II SD카드와 호환되는 점까지는 M11과 동일하다. 차이는 내장 메모리 용량과 CC 기록용 칩셋 탑재 여부다. M11에는 64GB 내장 메모리가 탑재됐는데 M11-P는 용량이 256GB로 늘었다. 고해상도 사진을 더 많이 저장하는 데 유리하다.
CC를 기록하려면 특수한 칩셋이 필요하다. M11-P에는 독일 인쇄국이 디지털 인증서를 만들 때 사용하는 칩셋이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 칩셋이 필요하다 보니 기존 카메라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CC 기록 기능을 추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앞으로 라이카가 출시할 제품에 M11-P와 같은 CC 기록 기능이 기본으로 탑재될 가능성은 있다.
M11-P 색상은 블랙과 실버 2가지 옵션으로 나뉜다. 가격은 M11보다 200달러 비싼 9195달러로 책정됐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이병찬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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