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에 서멀그리스를 바른 모습 (출처 : HWCooling)
컴퓨터를 조립할 때, CPU 위에 ‘서멀그리스(Thermal Grease)’라는 물질을 바른다. 치약처럼 생긴 서멀그리스는 열전도율이 높은 소재로 만든다. 열을 잘 전달하기 때문에 CPU에서 발생하는 열을 쿨러로 옮겨 방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때 열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려면 CPU와 쿨러 사이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시중에 판매되는 쿨러는 대부분 굉장히 센 압력으로 CPU와 밀착하도록 설계됐다. 추가로 CPU와 쿨러 사이를 서멀그리스가 꽉 채워준다면 열이 더욱 효율적으로 전달된다.
이에 사용자들은 서멀그리스를 어떤 모양으로 발라야 가장 이상적인 열전도율을 보일지 연구했다. 이는 조립 컴퓨터가 대중화된 이래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논쟁거리다.
■ 서멀 바르는 모양까지 논쟁…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서멀그리스를 짠 모양에 따라 퍼지는 형태도 다르다 (출처 : PugetSystems)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CPU 한가운데에만 서멀그리스를 짜면 된다고 주장했다. 쿨러를 장착하는 과정에서 강하게 누르기 때문에 가운데에만 서멀그리스를 짜도 가장자리까지 충분히 퍼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경우 서멀그리스가 동그랗게 퍼지는 문제가 있었다. CPU 구석까지 도달하지 못했는데 네 변에는 남는 서멀그리스가 넘치기도 했다.
서멀그리스를 X자 모양으로 짜면 구석까지 잘 퍼진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컴퓨터 조립업체 퓌제 시스템(Puget Systems)은 서멀그리스를 다양한 모양대로 짠 다음 투명 아크릴 판으로 눌러 어떤 모양으로 퍼지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X자 모양으로 짠 서멀그리스가 정사각형에 거의 근접한 모양대로 퍼졌다. CPU 온도도 서멀그리스를 한가운데 짜는 방식보다 약간 내려갔다.
서멀그리스를 X자 모양으로 짠 쪽의 CPU 온도가 좀 더 낮다 (출처 : PugetSystems)
하지만 이 방식도 완벽하지 않을 때가 있다. 서멀그리스 양이 부족하면 사각형을 꽉 채우지 못한다. 이 땐 X자 모양을 구성하는 선을 조금 짧게 그린 뒤 사이마다 서멀그리스를 조금씩 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당구장(※) 모양과 같다. 서멀그리스 양이 적다면 이 방법으로 사각형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서멀그리스 양이 충분하다면 번거롭기만 할 뿐 굳이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서멀그리스 도포 방식은 오랫동안 PC 관련 커뮤니티에서 인기 있는 논쟁거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용자는 X자 모양으로 바르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2021년 10월 인텔이 12세대 CPU ‘엘더 레이크(Alder Lake)’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인텔 12세대 CPU ‘엘더 레이크’부터 모양이 직사각형으로 바뀌었다 (출처 : VideoCardz)
엘더 레이크 시리즈 모양이 기존 정사각형 CPU와 달리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존 방식대로 서멀그리스를 바르면 구석까지 채워지지 않았다. 가운데 동그랗게 짜는 방식은 물론이고 그동안 가장 효율이 좋다고 여겼던 X자 모양 방식도 완벽하게 채우지 못했다. 이런 경우에는 서멀그리스를 어떻게 짜야 제대로 채울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다.
■ 꽉 채워 바를 자신 없다면 “붙이면 될 일”
논쟁의 원인은 CPU 모양에 맞게 서멀그리스를 깔끔히 도포하는 방식에 있었다. 그렇다면 열전도 물질을 서멀그리스 같은 유체가 아니라 모양이 일정한 고체로 대체하면 해결될 일이다.
서멀라이트 헤일로스 (출처 : Thermalright)
대만의 컴퓨터 냉각 부품 제조사 서멀라이트(Thermalright)는 7월 28일(현지시간) 자사 홈페이지에 CPU 전용 서멀 패드 ‘헤일로스(Heilos)’ 시리즈를 등록했다. 서멀그리스와 동일한 소재로 만들었지만 유동성이 없으며, CPU 모양에 맞게 사각형으로 재단됐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쿨러가 CPU와 닿는 면에 헤일로스 패드를 부착한 다음 그대로 장착하면 끝이다.
헤일로스는 인텔과 AMD CPU를 모두 지원한다 (출처 : Thermalright)
헤일로스 시리즈는 크기에 따라 2가지 옵션으로 출시됐다. 하나는 가로 40mm, 세로 40mm, 높이 0.2mm이며 다른 하나는 가로 30mm, 세로 40mm, 높이 0.2mm다. 전자는 AMD 라이젠 AM4/AM5 소켓과, 후자는 인텔 LGA 115X/1200/1700 소켓과 호환된다. 기존 정사각형 CPU는 물론 직사각형으로 바뀐 인텔 12세대 이상 CPU도 제대로 채우는 게 가능하다.
이 방법은 컴퓨터 조립 난이도를 크게 낮춘다. 조립 경험이 별로 없다면 서멀그리스를 얼마나 발라야 적절한지 감을 잡기 어렵다. 쿨러를 장착하려다 서멀그리스를 밀어내면서 옆으로 새거나 고르게 도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컴퓨터 조립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도 종종 이런 실수를 한다. 서멀그리스를 바르는 대신 CPU 모양대로 재단된 패드를 붙이면 훨씬 간편한 조립이 가능하다.
■ 단점은 열전도율, 장점은 조립 편의성
서멀그리스도 제품에 따라 성능 차이를 보인다. 열전도율이 높을수록 성능이 좋다. CPU에서 발생하는 열을 한 번에 더 많이 쿨러 쪽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열전도율 단위는 미터켈빈당 와트를 뜻하는 ‘W/m·K’로 표기한다. 숫자가 클수록 열전도율이 높다. 서멀라이트 헤일로스의 열전도율은 8.5W/m·K다. 이 수치는 기대보다 낮다는 평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보급형 서멀그리스 열전도율은 보통 8.3~8.5W/m·K 정도며, 고급 제품은 12~15W/m·K 정도다. 헤일로스의 열전도율은 기존 보급형 서멀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쿨러마스터 서멀 패드 (출처 : CoolerMaster)
심지어 헤일로스보다 비슷한데 열전도율이 높은 제품이 기존에 있었다. 2021년 9월 PC 관련 부품 제조사 쿨러마스터(CoolerMaster)가 출시한 서멀 패드 시리즈다. 서멀그리스를 반쯤 굳힌듯한 반고체 형태 제품이다. 면적은 가로 45mm, 세로 95mm로 헤일로스보다 넓다. 용도에 맞게 적절한 크기로 잘라 부착하는 방식이라 사용하기 번거롭다. 하지만 부착 부위의 크기에 맞출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CPU 소켓 호환성을 타지 않고 SSD나 그래픽카드처럼 발열이 있는 부품이라면 대부분 부착 가능하다.
쿨러마스터 서멀 패드 두께는 옵션에 따라 1mm와 2mm로 나뉜다. 서멀라이트 헤일로스(0.2mm)보다 훨씬 두껍다. 열전도율은 1mm 모델이 13.3W/m·K, 2mm 모델이 15.3W/m·K로 헤일로스보다 좋다. 단, 너무 두꺼운 서멀 패드를 사용하면 CPU 쿨러가 제대로 장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열전도율이 낮아도 두께가 얇은 헤일로스가 조립 난이도는 더 낮을 수 있다.
하지만 열전도율이 낮다는 단점이 치명적이다. 소식을 보도한 해외 PC 정보 매체 익스트림테크(ExtremeTech)는 CPU 오버클럭에 관심 없거나 컴퓨터 조립이 처음인 소비자가 사용하기 적절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매체는 이 제품이 서멀그리스나 타사 서멀 패드보다 사용하기 쉽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존에도 비슷한 제품이 있었지만 적정 크기로 잘라 써야 한다는 게 번거로웠다. 그런 면에서 크기까지 CPU에 맞게 재단된 헤일로스는 초심자가 컴퓨터를 조립하기 더 쉽게 해 준다.
테크플러스 에디터 이병찬
tech-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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