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은 이달 초 개최한 WWDC에서 첫 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비전 프로는 공개 직후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애플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제품이자, 7년 동안 개발에 공들인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애플 MR 헤드셋과 관련해 수많은 소문들이 난무했는데, 애플은 이번 발표를 통해 그 궁금증을 단번에 해소했다.
비전 프로는 예상보다 높은 사양과 유용한 기능으로 무장했다. 아이패드 프로, 맥북에 쓰이는 M2 칩이 기기 전체적인 구동을 맡는다. 여기에 R1이라는 새로운 칩을 추가해 수십여개 센서 신호를 눈 깜짝할 사이 처리한다고 한다. 최대 8K 해상도(각각 4K) 디스플레이에 공간 음향, 전용 운영체제 등등 비전 프로의 특징을 나열하면 끝도 없다.
제품을 먼저 사용한 몇몇 해외 후기를 보면, 비전 프로는 기대 이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고 한다. 배터리 효율을 제외하면 애플의 소개처럼, 혁신적인 경험을 선사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비전 프로가 모든 방면에서 호평을 받는 건 아니다. 비전 프로의 가장 큰 단점은 가격이다. 출시 가격이 한화로 450만원에 달한다.

이는 일반 사용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대다. 타사 제품과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다. 메타 퀘스트 2와 비교하면 애플 비전 프로가 8배나 비싸다. 곧 출시할 메타 퀘스트 3 대비 7배, 메타 퀘스트 프로보다 3배나 더 나가는 가격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가 공간 컴퓨팅의 시작을 알리는 혁신적인 기기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비싸면 잘 팔리지 않는다.
애플 비전 프로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합리적인 가격대를 지닌 제품이 필요하다. 최근 블룸버그(Bloomberg) 통신 기자 마크 거먼에 따르면, 애플이 저렴한 MR 헤드셋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거먼은 애플 소식통으로 불린다. 그동안 다양한 애플 신제품 관련 소식을 전해왔는데, 적중률이 꽤 높은 편이라 믿을 만하다고 평가된다.
앞서 거먼 기자는 애플이 리얼리티 프로, 리얼리티 원 그리고 리얼리티 프로세서를 개발 중이라고 전한 바 있다. 명칭은 다르지만, 당시 언급한 리얼리티 프로가 비전 프로라고 한다. 리얼리티 원은 보급형 MR 헤드셋으로 알려졌는데, 거먼 기자는 애플이 준비하고 있는 저렴한 MR 헤드셋 명칭이 ‘비전 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제품 가격을 줄이려면 사양을 낮추거나, 몇몇 기능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라인업에 따라 가격대와 성능을 달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플이 보급형 MR 헤드셋에서 제거할 기능으로는 눈과 렌즈 사이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IPD, 공간 음향 스피커 등이 꼽힌다. 디스플레이 해상도를 낮추거나, 이전 세대 연산 부품을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단가를 낮추려면 디스플레이 유형을 바꾸는 것도 현명한 방법 중 하나다. 비전 프로에 쓰인 마이크로 OLED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제작 원가가 높다. 중국 리서치업체 웰쎈XR에 따르면 비전 프로 원가는 1600달러로 추정되는데, 이 중 마이크로 OLED 가격이 43%에 달한다. 기기 제조 비용의 절반 정도가 디스플레이에서 발생했다는 얘기다.
단 디스플레이 변경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마이크로 OLED는 일반 OLED와 달리 실리콘 기판 위에 소자를 증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제작 방식만 다른 게 아니다. 일반 OLED 소자보다 훨씬 작은 소자를 쓴다. 각각 픽셀 크기가 굉장히 작아 초고해상도 화면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다.

마이크로 OLED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에 적합한 디스플레이라는 것이다. 실제 비전 프로에 쓰인 마이크로 OLED는 미래 VR·AR·MR·XR 헤드셋에 탑재될 주요 기술로 꼽힌다. 애플이 이런 핵심 요소를 과감히 포기할까. 물론 지금은 예단하기 어렵다. 아직 비전 프로도 출시되지 않았다. 비전 프로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판매된다.
보급형 MR 헤드셋은 이보다 늦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마크 거먼 기자는 애플이 이르면 2025년에 보급형 MR 헤드셋을 출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 2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기간 제품 개발 방향이 변경될 수도 있고, 디스플레이 기술 발전으로 생산 원가가 줄어들 수도 있다. 향후 애플과 업계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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