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에서 고든 무어는 거의 전설적 인물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출처 : 인텔)
고든 무어(Gorden Moore), PC나 반도체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반도체, 특히 집적회로 분야에서는 아버지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업적을 남긴 분이기 때문이죠. 이런 그가 지난 3월 24일, 향년 9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그는 하와이의 자택에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든 무어가 반도체 업계에서 대부 중 한 명으로 꼽혔던 것은 바로 ‘무어의 법칙(Moore’s Law)’ 때문입니다. 그는 반도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 수가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1965년에 언급한 바 있는데요. 그것이 무어의 법칙의 시작입니다. 물론 10년 뒤에는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정정하기는 했지만, 이 기조는 지금까지도 거의 깨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도체는 1800년대 후반에 발견되었습니다. 독일의 물리학자인 칼 페르디난드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이 결정질 고체가 정류기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찾으면서 시작된 것이죠. 이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황화납과 산화구리 등을 기반으로 다이오드가 개발되고 이후에는 트랜지스터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다양한 곳에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또한 트랜지스터가 본격적으로 쓰임새를 찾기 시작할 때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든 무어는 갤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화학 학사를 취득하고 캘리포니아 공과대에서 화학과 물리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뒤 팔로알토에 자리한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하게 됩니다.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이끈 윌리엄 브래드퍼드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는 뛰어난 공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쇼클리 박사의 성격을 버티지 못한 직원 8명이 사표를 제출합니다. 이것이 잘 알려진 ‘8명의 배신자’ 사건입니다. 고든 무어를 포함해 로버트 노이스, 제이 라스트, 진 호에르니, 빅터 그리니치, 유진 클라이너, 쉘든 로버츠, 줄리어스 블랭크로 구성되어 있지요. 사실 대표와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아 퇴사를 한 것일 뿐이지만, 쇼클리 박사는 이에 격분해 8인의 배신자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IBM, 모토로라 등 현재도 유명한 IT 기업에서 일하던 전문가들이었는데요. 8명은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나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반도체를 구성하는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가 탄생합니다. 1958년인데요. 이를 활용해 상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집적회로를 만들게 됩니다. 본래 트랜지스터는 쇼클리 박사가 제안했던 게르마늄 기반의 집적회로가 주목을 받았지만, 냉전시대 우주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고온에도 사용 가능한 전자부품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타이밍을 잘 잡아 페어차일드는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2년마다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2배로 증가한다는 내용을 담은 무어의 법칙은 지금도 반도체 업계의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무어의 법칙은 사실 이 시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 연구개발 이사로 재작하던 시절 그는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에서 반도체의 미래에 대한 기고를 요청 받습니다. 향후 10년간의 발전을 예상하는 글을 작성해 달라는 것이었죠. 이 때 그는 “최소 구성을 위한 복잡성은 매년 약 2배씩 증가했다. 단기적으로 이 비율은 증가하지 않더라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는 증가율이 불확실해도 10년 정도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리라 믿는다”고 언급합니다.
당시에 그가 주장한 것은 이렇습니다. 1962년에는 실리콘 칩당 트랜지스터 수가 23이 되고 다음해에는 24개, 1965년에는 26개로 증가했다. 이 추세로 봤을 때 10년 뒤인 1975년에는 216개가 될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8개 정도였던 트랜지스터 수가 계속 2배씩 늘어 10년 뒤에는 6만 5,000개 가량이 될 거라는 내용이었죠.
무어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반도체 제조사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텔 또한 소재와 집적 방식의 변화로 무어의 법칙을 계속 실현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인텔)
이것이 경험적인 부분이 반영되어 언급한 내용이라도 전자 산업계가 따라야 할 법칙 같은 느낌으로 고든 무어의 친구인 카버 미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가 무어의 법칙이라 이름을 붙였다죠. 하지만 이는 10년 후에 2년 마다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2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수정하게 됩니다. 현재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이 법칙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그의 제안이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고든 무어는 로버트 노이스와 함께 인텔을 창업했습니다. 이어 앤디 그로브를 영입하며 업계에서 승승장구해 나갑니다. (출처 : 인텔)
고든 무어는 로버트 노이스와 함께 페어차일드를 퇴사했고 1968년에 인텔을 창업하게 됩니다. 본래 휴렛패커드 느낌으로 두 이름을 합쳐 노이스-무어 일렉트로닉스라고 이름을 지었는데요. 다만 이름이 노이즈가 많다는 느낌을 준다고 하여 통합을 뜻하는 Integrate와 전자를 의미하는 Electronics를 합쳐 인텔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페어차일드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던 앤디 그로브를 영입합니다. 지금은 이 셋을 ‘인텔 트리니티’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로버트 노이스는 기판에 트랜지스터를 다수 집적하는 부분에 있어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로 결정합니다. 첫 제품은 바로 메모리였는데요. 이를 개발하기 위해 고든 무어와 앤디 그로브가 힘을 합쳤습니다. 1969년에 첫 메모리가 개발되고 이어 대량 생산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 다음 그들은 컴퓨터에 쓰일 마이크로칩 개발에 나섭니다.
메모리에 이어 인텔이 지금에 이를 수 있게 된 ‘인텔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 12mm2 면적의 실리콘 다이 위에 트랜지스터 2,300개가 집적되어 있습니다. (출처 : 인텔)
1971년 인텔은 ‘인텔 4004’를 개발하는데 성공하는데요. 이것이 인텔의 첫 마이크로프로세서라 부를 만합니다. 이후 인텔은 8008과 8086, 8088 등 8000 계열 프로세서를 선보인데 이어 286, 386 등으로 불리는 80×86 프로세서를 내놓습니다. 물론 이후 펜티엄과 코어2 듀오, 지금 코어 프로세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데스크톱 프로세서를 출시하고 있으며, 제온이나 아이태니엄과 같은 대규모 연산용 프로세서도 생산합니다.
고든 무어는 반도체 설계는 물론이고 경영인으로도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출처 : 인텔)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던 고든 무어는 설립 약 29년인 1997년까지 인텔 회장직을 이어가다 이후 명예회장직을 받아 2006년까지 활동했으며 이후에는 은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그의 부인과 함께 ‘고든&베티 무어 재단’을 설립해 자선활동을 시작했죠. 그의 반도체를 향한 열정은 앞으로도 모든 IT기기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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