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은 지루하다’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유명세를 탄 낫싱테크놀로지를 기억하시는지. 낫싱테크놀로지는 지난해 애플을 향한 과감한 비판과 함께, 독특한 디자인을 지닌 스마트폰 폰원(Phone(1))을 출시한 업체다. 낫싱테크놀로지는 제품 출시 전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해 낫싱폰은 그 어떤 제품보다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폰원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이었다. 내부 부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뒷판과 화려하게 빛나는 900여개의 LED 조명이 전부였다. 사양과 가격은 중급기 수준에 불과했다. 출시 초기에는 내부에 습기가 차는 등 품질 불량 이슈마저 불거졌다. 이에 폰원은 ‘애플은 지루하다’는 도발이 무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제품은 혹평을 받았지만, 낫싱테크놀로지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유효했다. 올해 초 칼 페이(Carl Pei) 낫싱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낫싱테크놀로지가 지난해 큰 성장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어 성장세를 발판 삼아 폰원 후속작 출시를 암시했다. 특히 그는 폰투(가칭)가 전작보다 더 나은 제품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시 한번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하려는 걸까. 칼 페이는 보다 자세한 정보는 공유하지 않았다. 이에 폰투가 어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할지를 두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더 나은 제품’이라는 칼 페이의 발언을 근거로, 퀄컴 스냅드래곤8 시리즈가 유력 후보군으로 꼽혔다. 단 스냅드래곤8 시리즈 중 어떤 모델을 사용할지 예단하긴 어렵다.
낫싱테크놀로지가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낫싱테크놀로지는 이번에도 최소한의 단서만 던지고 침묵을 유지했다. 낫싱테크놀로지는 이달 초 폰투에 스냅드래곤 8 시리즈가 탑재될 예정이라는 트윗을 남긴 뒤 추가 정보는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심을 유도하려는 낫싱테크놀로지의 전략을 가로막은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퀄컴의 경영진이다.
3월 6일(현지시간) IT매체 91모바일(91Mobiles)에 따르면 퀄컴 MCX(모바일·컴퓨팅·XR) 사업부 총괄하는 알렉스 카투지안(Alex Katouzian) 수석 부사장은 의도치 않게 폰투에 스냅드래곤8 플러스 1세대가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곧바로 비즈니스 소셜네트워크(SNS) 플랫폼 링크드인에 올린 해당 게시글을 삭제했지만, 캡처 이미지 확산을 막진 못했다.

스냅드래곤8 시리즈는 플래그십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AP다. 일반 버전과 플러스 버전으로 나뉘는데, 퀄컴은 보통 일반 버전을 먼저 선보인 다음 플러스 버전을 발표한다. 플러스 버전은 일반 버전보다 더 나은 성능을 제공한다. 스냅드래곤8 플러스 1세대도 마찬가지다. 일반 스냅드래곤8 1세대 대비 최대 10% 더 빠르며, 전성비도 좋다.
그러나 스냅드래곤8 플러스 1세대는 한 세대 뒤처진 AP다. 지난해 하반기 출시한 안드로이드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되던 프로세서다. 최신 AP는 삼성전자 갤럭시 S23 시리즈에 들어간 스냅드래곤8 2세대다. 스냅드래곤8 플러스 1세대 성능도 충분히 뛰어나지만, 스냅드래곤8 2세대에 비하면 어딘가 아쉬운 게 사실이다.
플래그십 사양을 갖춘 폰투를 기대한 이들의 실망이 클 듯하다. 차세대 플래그십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보통 출시일 기준 가장 빠른 AP를 탑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웨이처럼 플래그십 제품에 한 세대 뒤처진 AP를 탑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화웨이는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인해 5G를 지원하는 최신 AP를 사용하지 못하는 특수한 상황이다.

물론 칼 페이와 낫싱테크놀로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제품에 탑재할 AP를 알려주지 않았을 뿐이다. 스냅드래곤 778G 플러스를 탑재한 폰원에 비교하면, 폰투는 분명 사양 면에서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한 세대 뒤처진 플래그십 AP를 탑재했다고 해서, 폰투를 ‘플래그십폰’, ‘프리미엄폰’이라고 부르긴 어렵다.
만약 폰투가 올해 하반기에 출시된다면, 다른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 매년 하반기 출시된 플래그십 스마트폰은 플러스 버전 스냅드래곤8 시리즈를 탑재하기 때문. 이 경우 폰투는 더욱 플래그십과 거리가 멀어지는 셈이다. 낫싱폰이 플래그십이라는 단어를 당당하게 사용하려면 사양이라는 구색부터 맞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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